부하라(우즈베크어: Buxoro/Бухоро, 페르시아어: بخارا, 러시아어: Бухара)는 우즈베키스탄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부하라주의 주도이다. 자라프샨강(Zeravshan River) 하류의 오아시스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2020년 1월 기준 인구는 약 280,187명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이다.
어원
도시명 '부하라'의 정확한 어원은 고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학자들 사이에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산스크리트어 '비하라(vihāra, 불교 사원)'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다른 학설에 따르면 소그드어 'βuxārak(행운의 장소)'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세 이후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문헌에서는 'Bukhārā(بخارا)'로 표기되었으며, 이슬람 세계에서는 '고귀한 부하라(Bukhārā-ye sharīf)'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역사
부하라는 약 2,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고대 도시로, 실크로드의 주요 요충지로서 무역, 학문, 문화,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기원전 6세기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최초의 문헌 기록은 서기 5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에는 소그드 지역의 주요 도시였으며, 709년 아랍 제국에 정복된 이후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892년부터는 사만 왕조(Samanid Empire)의 수도가 되었고, 이 시기 부하라는 이슬람 세계의 주요 지적·문화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페르시아 시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다키(Rudaki)와 유명한 학자 이맘 부하리(Imam Bukhari)가 이 도시에서 활동하였다.
1220년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에 의해 함락되어 심각한 파괴를 겪었으나, 이후 티무르 제국 시기에 재건되었다. 16세기부터는 부하라 칸국(Khanate of Bukhara)의 수도가 되었고, 이후 부하라 토후국(Emirate of Bukhara)으로 이어졌다. 1920년 붉은 군대에 의해 점령되었고, 1920년부터 1924년까지 부하라 인민 소비에트 공화국이 존재한 후,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통합되었다.
지리 및 기후
부하라는 사마르칸트에서 서쪽으로 약 225km 떨어져 있으며, 해발 225m에 위치한다. 기후는 전형적인 중앙아시아의 건조 기후(쾨펜 기후 구분 BWk)로, 1월 평균 최고 기온은 6.6°C, 7월 평균 최고 기온은 37.2°C에 달한다.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5mm로 매우 건조하다.
문화유산
부하라 구시가지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Historic Centre of Bukhara)으로 등재되었다. 주요 건축물로는 칼란 미나렛(Kalyan Minaret, 45.6m 높이), 이스마일 사마니 묘(Ismail Samani Mausoleum, 9~10세기), 아르크 성채(Ark of Bukhara), 포이칼란 사원 단지(Po-i-Kalyan Complex), 초르 미노르(Chor Minor), 미리 아랍 마드라사(Mir-i-Arab Madrasah) 등 약 140개의 건축 기념물이 보존되어 있다. 이 도시는 중앙아시아 중세 도시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사례로 평가된다.
인구와 민족
공식 통계상 인구의 약 82%가 우즈베크인으로 분류되나, 실제로는 타지크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타지크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하라 유대인(Bukharan Jews) 공동체도 역사적으로 존재했으나, 1925년에서 2000년 사이 대부분 이주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이 다수이나, 기독교 등 소수 종교 공동체도 존재한다.
경제 및 교통
부하라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슈켄트 다음으로 큰 교통 허브이며, 국제공항을 통해 국내외 항공편이 운항된다. 철도와 도로망이 발달되어 있으며, 인근 투르크메니스탄 국경(약 80km)과 연결된다. 전통적으로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관광업이 중요한 경제 부문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