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차(夫差, ? ~ 기원전 473년)는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吳)의 제7대이자 마지막 군주이다. 성은 희(姬), 씨는 고발(姑發), 휘는 부차(夫差)이며, 오왕 합려(闔閭)의 차남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495년부터 기원전 473년까지이다.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생애
부차의 아버지 합려는 월나라와의 전투에서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합려는 죽기 전 부차에게 복수를 당부하였다. 부차는 이 복수를 잊지 않기 위해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잠을 자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하였다. 이 일화는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의 유래로 알려져 있다.
오자서(伍子胥)의 보좌를 받아 국력을 키운 부차는 기원전 494년 부초(夫椒) 전투에서 월왕 구천(句踐)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고 월나라의 도읍을 포위하였다. 구천은 회계산(會稽山)에서 농성하다가 항복을 청하였다. 오자서는 구천을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부차는 월나라가 바친 미인 서시(西施)와 태재(太宰) 백비(伯嚭)의 권유에 따라 구천을 살려주었다. 구천은 오나라에 포로로 잡혀와 신하와 노비로 복무하다가 월나라로 돌아갔다.
이후 부차는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제나라를 공격하고 황하 유역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기원전 484년, 백비의 중상모략과 월나라 범려(范蠡)의 반간계(反間計)로 인해 부차는 오자서에게 촉루(屬鏤)라는 명검을 내려 자결을 명하였고, 그 시체를 장강에 던져버렸다.
기원전 482년, 부차가 진(晉)나라와의 회맹에서 패자의 지위를 다투기 위해 정예 병력을 이끌고 북상한 틈을 타,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기습 공격하여 태자와 그 형제들을 처형하였다. 이후 오나라는 월나라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국력이 쇠퇴하였고, 기원전 473년 월나라에 도읍이 함락되었다. 부차는 구천에게 항복을 청했으나 거절당하였고, 고소산(姑蘇山)에서 얼굴을 가린 채 자결하였다. 이로써 오나라는 멸망하였다.
가계
부차의 아버지는 오왕 합려이다. 부차에게는 태자 우(友)와 왕자 지(地) 등의 아들이 있었으며, 태자 우는 기원전 482년 월나라의 기습 공격 때 전사하였다. 부차의 손자로는 오누양(吳縷羊)이 있으며, 오나라 멸망 후 주나라 천자로부터 오(吳)씨를 하사받아 중국 오씨의 시조가 되었다.
유물
1983년 중국 호북성 강릉(江陵)의 초나라 무덤에서 '오왕부차모(吳王夫差矛)'가 발굴되었다. 이 청동 모(矛)의 기부에는 두 줄로 8자의 금착 명문이 새겨져 있어 오왕 부차가 직접 제작한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평가
부차는 초기에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오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군주였으나, 후기에는 교만에 빠져 충신의 간언을 무시하고 적국을 과신한 결과 오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다. 그의 생애는 승리와 교만, 그리고 몰락이라는 비극적 순환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