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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태비

부여태비(扶餘太妃, 690년~738년)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義慈王)의 증손녀이자 부여융(扶餘隆)의 손녀, 부여덕장(扶餘德璋)의 딸이다.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부여'는 백제 왕족의 성씨, '태비(太妃)'는 왕의 어머니를 뜻하는 칭호이다. 따라서 부여태비는 성씨가 부여씨인 태비라는 뜻으로, 그녀의 최종 책봉명에서 유래한 호칭이다.

부여태비는 690년에 태어났다. 711년 당(唐) 고조 이연(李淵)의 증손자인 사괵왕(嗣虢王) 이옹(李邕)의 두 번째 부인으로 혼인하였고, 718년 사괵왕비(嗣虢王妃)로 책봉되었다. 727년 남편 이옹이 사망한 후 맏아들 이거(李巨)가 사괵왕의 지위를 이어받았고, 그로부터 4년 뒤인 731년에 태비(太妃)로 책봉되었다.

부여태비는 이옹과의 사이에서 이거, 이승소(李承昭), 이승희(李承曦), 이승준(李承晙), 이승질(李承晊) 등 다섯 아들을 두었다. 738년 8월 9일 장안(長安) 숭현방의 사저에서 4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그해 11월 15일 남편 이옹의 묘에 합장되었다.

부여태비의 존재는 2004년 봄 중국 섬서성(陝西省) 고고연구원이 당 고조 이연의 무덤인 헌릉(獻陵)의 딸린무덤(陪塚)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출토지는 섬서성 부평현 두촌진 여촌향으로, 무덤은 도굴 피해를 입었으나 태비 부여씨와 이옹의 묘지명(墓誌銘)은 온전히 남아 있었다. 묘지명은 청석(靑石)으로 제작되었으며, 뚜껑돌 전면에는 전서(篆書)로 「당고괵왕비부여지명(唐故虢王妃扶餘誌銘)」이라고 새겨져 있다. 지석은 총 30행, 1행당 31자, 총 831자로 해서(楷書)로 기록되었으며, 글은 양섭(梁涉)이 지었다.

묘지명에 따르면 부여태비에 대해 "남국(南國) 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우니 봄날의 숲과 가을 단풍 같았다"고 묘사하였으며, 이옹과 혼인한 후 집안을 일으켰다고 기록되었다.

부여태비 묘지명의 발견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문헌 기록에 상세히 남아 있지 않던 백제 태자 부여융의 자손 가계를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부여융의 아들로 부여덕장의 존재가 새로 확인되었고, 부여융에게는 부여문사(扶餘文思), 부여문선(扶餘文宣), 부여덕장 등 세 아들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부여융의 뒤를 이어 대방군왕(帶方郡王)으로 책봉된 부여경(扶餘敬)이 부여문사의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묘지명은 백제 멸망 후 당으로 끌려간 의자왕과 그 후손들이 실제로 어떤 대우를 받으며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금석문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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