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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경

부여경(扶餘敬)은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의 증손자이며, 당나라로 망명한 백제 왕족 부여융(扶餘隆)의 손자이다. 부여융의 아들로는 부여문선(扶餘文宣), 부여덕장(扶餘德璋) 등이 확인되나, 부여경의 아버지가 이들 중 누구인지는 기록에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부여융 사후 그의 적장자인 부여문사의 아들일 가능성이 학계에서 추정되고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682년(당 고종 영순 원년), 부여융이 사망하자 측천무후(則天武后)는 부여경에게 할아버지의 대방군왕(帶方郡王) 작위를 계승하도록 허락하였으며, 위위경(衛尉卿)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방군의 봉지는 이미 통일신라와 발해에게 넘어간 상태였기 때문에, 명목상의 작위에 가까웠다.

677년 당나라는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요동 지역의 건안성(建安城)으로 이치하고 백제 유민들을 함께 이주시켰는데, 부여경이 즉위할 당시 웅진도독부의 실질적인 통치력은 이미 상실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구당서(舊唐書)》〈현종본기〉의 725년 기록에는 당나라의 내신(內臣)으로 '백제대방군왕(百濟帶方郡王)'이 언급되는데, 이 인물이 부여경과 동일인물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부여경의 생몰년과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사료의 부족으로 자세히 알 수 없다. 웅진도독부가 요동으로 이전된 이후의 상황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여, 부여경을 포함한 백제 유민들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학설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부 학자는 발해가 8세기 중반에서 9세기 초반 요동 반도에 진출할 때 발해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보며, 다른 학자는 7세기 말 대조영(大祚榮)의 공격으로 이미 소멸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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