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청마산성(扶餘 靑馬山城, Buyeo Cheongmasanseong Fortress)
부여 청마산성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위치한 백제 시대의 산성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 사적 제34호로 지정되었다. 현재의 지정 체계에서는 '사적'으로 분류되며, 2021년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 체계가 변경되었다.
위치 및 범위
부여 청마산성은 부여읍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약 4km 거리에 위치하며, 부여읍의 능산리, 용정리, 가증리, 송곡리와 초촌면 신암리에 걸쳐 있다. 성 내부에는 오석산, 월명산, 청마산 등의 산봉우리가 있으며, 성벽의 둘레는 2006년 정밀 지표 조사에서 9,277m로 계측되었다. 이는 백제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태 및 구조
이 산성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 계곡을 감싸며 성벽을 둘러 쌓는 방식인 포곡식 산성이다. 성내 지형은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동고서저(東高西低) 형태이다. 동벽과 남벽이 만나는 지점은 해발 약 230m의 산 정상부까지 성벽이 이어지며, 서벽은 해발 50m 이하의 계곡부를 지난다. 지형적 특성상 서벽 일대가 주된 출입 통로로 추정된다.
성벽의 축성 방식은 지형에 따라 편축식과 협축식이 모두 확인된다. 화강암을 사용하여 가로:세로가 대체로 2:1 비율이 되도록 성돌을 다듬고 바른 층 쌓기를 하였다. 성벽의 일부 구간에서는 큰 성돌(가로 110cm 이상)을 사용한 부분도 존재한다.
성내 시설
2006년 정밀 지표 조사에 따라 성내 시설로는 문지 10개소, 치(성벽 돌출부) 32개소, 작은 규모의 치 4개소, 수구지 17개소, 장대지 5개소, 보루 2개소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성 내부에는 9개소의 유물 산포지가 있으며, 산성 내외에는 능산리 능안골 고분군 등 14개소의 고분군이 위치한다. 성내에는 '각씨우물'이라고 전하는 우물터와 경룡사, 의열사터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쪽 성벽 중간 구간에 위치한 수구는 성벽이 약간 오목해지는 지점에 있으며, 바른 층 쌓기한 성벽의 중앙부에 판석을 세로로 세우고 그 위에 덮개돌을 덮은 구조로 조성되었다.
역사적 배경 및 성격
부여 청마산성은 백제 사비 도성(538년~660년)의 방어를 위해 축조된 배후 산성으로 인식된다. 가림성, 석성산성 등과 함께 사비 도성을 방어하는 성곽 체계의 일부를 이루었다. 사비 도성에서 공주와 논산 방면으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상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학계의 견해가 나뉜다. 산성 인근에 위치한 용정리 사지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된 점과 501년에 축조된 가림성 등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사비 천도(538년) 이전에 축성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반면, 산성의 규모가 다른 백제 산성에 비해 대규모인 점, 사비 함락 전 의자왕이 청마산성이 아닌 웅진성으로 피신한 점, 나당 연합군에 대항하거나 부흥 운동 시 거점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백제 이후에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발굴 및 조사 현황
성벽과 관련된 본격적인 발굴 조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성벽의 둘레 등에 대한 견해도 연구자마다 차이가 있다. 다만 2006년 종합학술조사가 수행되었고, 이후 성벽 추정선을 따라 잡목을 제거하고 일부 탐방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백제 사비기 석실묘 2기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장대지로 추정되는 지점에서는 백제 토기편과 고려시대 기와편이 확인되었다.
의의
부여 청마산성은 백제 사비 도성의 방어 체계와 도성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부여 부소산성 및 부여 나성과 더불어 평지성과 배후 산성이 결합된 도성 구조의 일부로 인식된다. 대한민국 국가유산(사적)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