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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김씨

부안 김씨(扶安金氏)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부령 김씨(扶寧金氏)라고도 불린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인구는 69,157명으로 집계되었다.

연원과 시조

부안 김씨는 신라의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를 원시조로,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의 장자 김일(金鎰)을 시조로 삼는다. 김일은 935년(경순왕 9) 부왕이 고려에 귀부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였고, 이후 망국의 한을 품고 처자를 거느리고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으로 들어가 마의초식(麻衣草食)으로 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세상에서는 그를 마의태자(麻衣太子)라고 불렀다.

김일의 후손들은 고려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산중에 은거하다가, 고려 선종(宣宗) 때 5세손 김경수(金景修)가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며 세상에 나왔다. 김경수의 아들 김춘(金春)이 부령부원군(扶寧府院君)에 봉해지면서 부령을 본관으로 삼았고, 후손들은 김경수를 일세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이후 조선 태종 때 부령현과 보안현이 합쳐져 부안현이 되면서 부안 김씨로 부르게 되었다.

주요 인물

부안 김씨의 대표적 인물로는 고려 고종 때 12세의 나이로 성균관 진사에 오르고 22세에 문과에 급제한 김구(金坵, 1211~1278)가 있다. 그는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으며, 몽골의 지배 아래에서 외교를 맡아 뛰어난 지략과 문장력으로 국란을 극복한 인물로 평가된다. 호는 지포(止浦)이며, 문집으로 『지포집(止浦集)』이 전한다. 김구의 네 아들도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냈다.

조선 시대에는 김계(金啓)가 명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에 이르렀고,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기대승, 율곡 이이 등과 도의를 강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김해(金垓), 조선 말기 호남 지역의 대표적 성리학자로 일컬어진 김택술(金澤述) 등이 있다.

분파와 집성촌

부안 김씨는 현재 13개 대파와 그 아래 53개 소파로 나뉘어 전국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주요 집성촌으로는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정읍시, 남원시, 장수군, 전라남도 곡성군 등이 있다.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산은 부안 김씨의 대표적인 선산으로, 조상들의 묘와 비석이 숲을 이루고 있다.

문화유산

부안 김씨는 임진왜란 이전인 1584년(선조 17)에 『만력갑신보(萬曆甲申譜)』라는 족보를 발간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초기의 몇 안 되는 족보 중 하나로, 씨족 문화가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지포 김구 선생 묘역 일원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1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취성재(聚星齋) 및 김직손 신도비 등 관련 유적이 부안 지역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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