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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등수산학교

부산고등수산학교(釜山高等水産學校)는 일제강점기인 1941년 부산에 설치된 4년제 구제 관립전문학교이다. 부산 지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자 비수도권 최초의 관립고등교육기관으로, 오늘날 부경대학교의 전신 중 하나로 평가된다.

설립 배경과 경위

수산 분야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은 1930년대 후반에 본격화되었으며, 조선총독부 당국은 학교의 설립지를 함경북도 청진 또는 함경남도 원산으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부산이 일본과의 교통이 가장 편리하고 동아시아의 관문으로서 대륙 진출의 요충지였으며, 수산시험장이 설치되어 있는 등 수산 교육기관으로서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판단에 따라 설립지가 부산으로 확정되었다. 부산고등수산학교는 1941년 3월 28일에 신설 인가를 받아 같은 해 5월 15일에 개교하였다. 당시 전국에서 20번째로 설립된 고등교육기관이었다.

교과 과정과 시설

설립 당시 학교에는 어로과, 제조과, 양식과의 3개 학과가 있었다. 학교 부지는 부산부 대연리(현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마련되었으며, 이곳은 현재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가 위치한 부지에 해당한다. 개교 당시에는 가교사에 출발하여 이후 본격적인 교사가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 운영의 한계

일제강점기 동안 이 학교는 한국인의 입학이 제한되어 있었다. 특히 어로과의 경우 한국인에게 어업에 관한 고급 기술과 기능을 가르치지 않기 위해 1941년에 입학한 제1기생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1944년 6월 통계에 따르면 전교 재적생 325명 중 한국인 학생은 불과 49명에 불과하였다. 또한 설립부터 일제 말기까지 교원은 모두 일본인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이 학교는 한국인의 교육을 위한 기관이라기보다 일제의 군수 산업 일환으로 수산 자원을 확보·약탈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학계에서 평가한다.

이후 변천

1944년 4월 고등전문학교령에 따라 각 고등전문학교의 명칭이 통일되면서 부산수산전문학교로 개칭되었다. 광복 후에는 미군정의 혼란 속에서 학교의 존폐 위기를 겪었으며, 일시적으로 학교 건물이 미군 시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군정청이 학교를 인천으로 이전하거나 폐교하려는 방침을 세우자 부산 지역 교육인들이 부산수산전문학교후원회를 결성하여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결과 부산 잔류가 결정되었다.

1946년 5월 15일 부산수산전문학교를 기반으로 인문학부를 병설한 종합대학교인 국립부산대학교가 설립되면서 이 학교는 그 수산학부로 흡수되었다. 이후 수산과대학으로 변경되었다가, 1947년 다시 인문계 단과대학인 부산대학과 분리되어 부산수산대학으로 독립하였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국립대학 정비 과정에서 다시 부산대학교와 통합되었다가 1964년 재차 분리되었다. 이후 1990년 종합대학교로 승격되어 부산수산대학교가 되었으며, 1996년 부산공업대학교와 통합하여 오늘날의 국립부경대학교로 출범하였다.

의의

부산고등수산학교는 부산 및 영남 지역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지역 대학 교육의 시초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동시에 현 부경대학교의 정체성 형성에 핵심적 토대가 된 기관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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