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도위(駙馬都尉)는 임금의 사위, 즉 공주의 남편에게 부여되던 칭호이자 위호(位號)이다. 흔히 '부마(駙馬)'라고 줄여 부른다. 이 개념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서에 모두 확인되는 실제 역사적 제도로, 어원과 제도의 변천 과정이 문헌 기록을 통해 상세히 알려져 있다.
어원과 기원
'부마도위'의 원래 의미는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처음 등장한 관직명으로, 황제의 수레를 끄는 말을 관리하는 직책을 가리켰다. 특히 국왕의 행차 때 암살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국왕이 탄 마차와 구별되는 위장용 마차인 '부거(副車)'를 끄는 말인 '부마(駙馬)'를 관리하는 직위가 그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관직은 녹봉이 2천석(二千石)에 달하는 고위 관직이었기 때문에 점차 왕실 인척이나 유력 외척, 제후들이 맡게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후로는 황제의 사위나 공주의 남편이 부마도위를 전담하게 되면서, 이 용어가 곧 임금의 사위를 가리키는 칭호로 정착하였다.
후한(後漢) 명제(明帝)가 자신의 여동생인 관도공주(館陶公主)를 당시 부마도위였던 한광(韓光)에게 시집보낸 것이 황제의 사위가 부마도위를 맡게 된 첫 사례로 전해진다. 이후 관직으로서의 실체는 점차 사라지고 명예 칭호로 남게 되었으며, 청나라 시대에는 '액부(額駙)'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쓰이기도 하였다.
한국에서의 전개
한국에서는 고구려 시대부터 부마도위라는 칭호가 사용된 기록이 있다. 『신당서(新唐書)』에 고구려에서 왕녀에게 장가든 사람을 '부마도위'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중천왕 9년(256년) 관련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는 부마를 종친처럼 봉군(封君)하여 이성제군부(異姓諸君府)에 소속시켰으나, 봉군이 남용된다는 이유로 1444년(세종 26) 7월에 따로 산계(散階)를 정하고 이성제군부를 부마부(駙馬府)로 고쳐 당나라와 송나라의 제도를 따라 '위(尉)'의 호를 쓰게 되었다. 이후 1466년(세조 12)에는 부마부를 의빈부(儀賓府)로 고치고 의빈(儀賓)·승빈(承賓)·부빈(副賓)·첨빈(僉賓) 등의 칭호를 두었다가, 『경국대전』에서 다시 '위'로 개정하였다.
조선시대의 품계 체계에 따르면, 적실 왕비가 낳은 공주에게 장가든 자는 종1품의 위(尉)를 초수(初授)받았고, 서실 왕비가 낳은 옹주에게 장가든 자는 종2품의 위를 초수받았다. 왕세자의 딸인 적실군주(嫡室郡主)에게 장가든 자는 정3품의 부위(副尉), 서실현주(庶室縣主)에게 장가든 자는 종3품의 첨위(僉尉)를 초수받았다. 이와 같이 부마도위는 혼인 대상의 신분에 따라 품계가 차등 적용되는 제도였다.
이 밖에도 부마는 '국서(國婿)' 또는 '의빈(儀賓)'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렸다. 부마는 왕족이 아닌 외척(外戚)으로 분류되었으며, 중국에서는 기도위(騎都尉)·봉거도위(奉車都尉)와 함께 '삼도위(三都尉)'로 나란히 불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 자료
- 『세종실록』, 『세조실록』, 『경국대전』, 『증보문헌비고』
- 『삼국사기』 권17 〈고구려본기〉
- 『신당서』
이상의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위키백과 등 공신력 있는 사료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부마도위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실제로 존재한 확인된 제도 및 칭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