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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태백산사고지

봉화 태백산사고지(奉化 太白山史庫址)는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사고(史庫) 터이다. 사고란 조선시대에 역대 왕의 실록과 왕실 족보 등 국가의 중요 문서를 보관하던 서고를 말하며, 현대의 국립기록보관소에 해당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곳은 1991년 2월 26일 대한민국 사적 제34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각지에 사고를 설치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분산 보관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춘추관(春秋館), 오대산(五臺山), 마니산(摩尼山, 정족산), 적상산(赤裳山), 태백산(太白山)의 다섯 곳에 사고가 운영되었으며, 태백산사고는 이 중 하나였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주사고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실록이 소실되자, 조선 정부는 1603년(선조 36)부터 실록 복구 사업을 시작하여 전주사고본을 바탕으로 역대 왕의 실록을 새로 인출하였다. 태백산사고는 1605년에 태백산 입봉 아래에 터를 잡아 공사가 시작되었고, 이듬해인 1606년에 건물을 준공하여 실록을 봉안하였다.

태백산사고의 건축은 중층 건물에 팔작지붕을 올리고 지붕 각 마루에 양성(陽性)을 하여 장중한 위엄을 갖추었으며, 이 시기 사고 건축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외관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사고의 구조는 실록각(實錄閣)과 선원각(璿源閣)을 기본으로 하고 그 밖의 부속 건물로 구성되었다. 사고의 개고(開庫)는 정기적인 포쇄(曝曬, 책의 습기를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행위)와 봉안·개수 등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에만 조정에서 사관(史官)을 파견하여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지방 수령이 자의로 사고를 개폐할 수 없도록 하였다. 1606년부터 1892년까지 태백산사고의 개고 횟수는 90회에 이른다.

태백산사고에는 참봉과 십여 명의 수복이 교대로 근무하였고, 수호사찰인 각화사(覺華寺)에 승군 25명을 두어 사고를 수호하게 하였다. 봉화는 작은 고을이라 사고를 수호하기에 역부족이었던 관계로, 당시 안동에 속해 있던 춘양면을 봉화에 붙여 지원하도록 한 기록도 있다.

1910년 국권이 침탈된 이후 태백산사고본 실록은 이듬해 조선총독부 학무과로 옮겨졌고, 1930년에는 경성제국대학으로 이전되었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에 소장되었다가 1985년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로 이관되었으며, 현재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에 보존되어 있다. 사고 건물 자체는 해방 전후에 소실되고 산사태 등으로 매몰되었던 것을 1988년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실록각·선원각·포쇄각·근천관 등의 건물터가 남아 있다.

1958년 국사편찬위원회는 태백산사고본 실록을 축쇄하여 영인본 『조선왕조실록』 48책을 간행하여 학계에 보급하였다. 이후 한국고전번역원(구 민족문화추진회)과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실록을 국역하였고,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를 통합하여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봉화 태백산사고지는 조선시대 국가 기록 보존 체계와 사고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유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한 장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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