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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토분

봉토분(封土墳)은 흙으로 무덤의 무지(분구, 墳丘)를 만든 고분을 말한다. 매장 주체 시설의 상부와 좌우를 흙으로 덮어 쌓아 올린 형태의 무덤으로, '토총(土塚)'이라고도 한다.

개념 및 구조

봉토분은 매장 주체 시설인 '묘(墓)'와 지표상에 무덤을 표시하기 위해 흙을 높이 쌓아 올린 '분(墳)'이 결합된 무덤 양식이다. 근대 고고학 초기에는 흙무덤을 '토총', 돌무덤을 '석총(石塚)'으로 구분하였으나, 현재는 '봉토분'과 '적석총(積石塚)'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봉토분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과 원형이 있으며, 시기가 내려오면서 원형으로 통일되는 양상을 보인다. 분구의 경사각도는 개별 고분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개 26~30° 내외이다.

기원과 역사

동아시아에서 봉토분은 중국 춘추시대 말기 무렵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시대부터 크게 유행하였으며, 진시황릉에서 그 정점을 이루었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까지는 고인돌과 적석총 계통의 무덤이 주류였으나, 초기 철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중국 전국시대 연(燕)과 연접한 지역에 봉토분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고조선 말기의 주된 무덤 양식이 되었다.

낙랑군이 설치된 이후에는 중원식 덧널무덤(목곽묘)이나 벽돌무덤(전축분)을 매장 주체로 한 봉토분이 서북한 지역의 주요 무덤 양식이 되었다. 이후 원삼국시대 후반기(서기전 150년 이후)에는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낙랑의 영향을 받은 덧널무덤을 매장 주체로 한 봉토분이 유행하였다.

삼국시대의 봉토분

  • 고구려: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부터 집안 일대를 비롯한 각지에 봉토분이 조성되었고, 5세기 후반 이후 크게 유행하였다. 평양 천도 이후에는 돌방(석실)을 매장 주체로 한 봉토분이 주로 사용되었다. 분구는 방대형(方臺形)이 대표적이며, 대표적인 예로 벽화분이 있다. 고구려 고분은 적석총(전기)과 봉토분(후기)으로 시기 구분된다.
  • 백제: 초기에는 고구려와 유사한 적석총을 사용하였으나, 한성 시기 말기 무렵부터 돌방을 매장 주체로 한 봉토분이 주류가 되었다.
  • 신라: 덧널을 매장 주체 시설로 하고 그 주위와 위에 적석(돌 쌓기)을 한 다음 흙을 덮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라는 독특한 양식을 사용하다가, 6세기 이후 돌방을 매장 주체로 한 봉토분으로 대체하였다. 경주 평지의 고총과 건천 금척리 고분군 등은 적석부 위에 봉토를 쌓은 절충 형식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고총은 모두 봉토분이며, 매장 주체 시설은 횡혈식석실 또는 횡구식석실이다.
  • 가야: 구덩식돌덧널(수혈식석곽)을 매장 주체로 한 봉토분이 주된 무덤 양식으로 사용되었으며, 말기에 돌방을 매장 주체로 한 봉토분이 나타났다. 고성 송학동·율대리·내산리 등 고성만 일대의 가야 고총과 영산강 중·하류 지역의 고총은 흙으로 분구를 만든 후 매장 주체 시설을 구축한 형태로, 별도로 분구묘라 한다.

봉토분의 매장 주체 시설

봉토분의 매장 주체 시설은 목곽(덧널), 수혈식석곽(구덩식돌덧널), 횡구식석실, 횡혈식석실, 전실(벽돌방)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매장 주체부가 대부분 지상에 위치하여 석실과 봉토를 동시에 구축하였으며, 이는 매장 주체부가 지하에 위치한 이전 시기의 방식과 차이가 있다.

참고문헌

  • 국립문화유산연구원,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토총」 항목 (김용성 집필)
  • 조영현, 「봉토분의 성토방식에 관하여-구분성토현상을 중심으로」, 『영남고고학』 13, 영남고고학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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