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Bolesław I Chrobry, 967년 ~ 1025년 6월 17일)는 폴란드 피아스트 왕조 출신의 공작이자 폴란드 역사상 최초의 국왕으로, 폴란드어로 "용감한"을 뜻하는 '흐로브리(Chrobry)'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볼레스와프 대왕(Bolesław I Wielki)'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보헤미아 공작으로서는 볼레슬라프 4세(Boleslav IV)로도 지칭된다.
생애와 즉위
볼레스와프 1세는 폴란드 최초의 역사적 통치자로 알려진 미에슈코 1세(Mieszko I)와 보헤미아의 공작 가문 출신인 도브라바(Dobrawa) 사이에서 967년경 태어났다. 그는 992년 아버지 미에슈코 1세가 사망한 뒤 폴란드의 공작으로 즉위하였다. 즉위 과정에서 계모와 이복 형제들을 축출하고 권력을 공고히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니에즈노 회동과 기독교 정책
997년 보헤미아의 프라하 주교였던 아달베르트(보이테흐)가 이교도 지역에서 순교하자, 볼레스와프 1세는 그의 시신을 그니에즈노(Gniezno) 성당에 안치하였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3세 황제는 아달베르트를 성인으로 시성하였고, 1000년 그니에즈노를 직접 방문하여 볼레스와프 1세에게 신성 로마 제국의 귀족 칭호와 왕관을 수여하였다. 이른바 '그니에즈노 회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그니에즈노에 대주교구가 설치되었고, 크라쿠프·브로츠와프·코워브제크에 교구가 신설되어 폴란드 교회가 독일 교회의 통제에서 독립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영토 확장과 대외 관계
1002년 오토 3세가 사망한 이후, 볼레스와프 1세는 폴란드의 영토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002년 루사티아(Lusatia)를 정복하였고, 1003년에는 보헤미아, 모라바, 슬로바키아 지역을 점령하여 보헤미아 공작 자리를 겸하기도 하였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2세 황제와 장기간의 전쟁을 벌였으며, 1018년 바우첸(Bautzen) 조약으로 평화를 이루었다. 같은 해 볼레스와프 1세는 자신의 사위였던 키예프 대공국(루스)의 스뱌토폴크 1세를 지원하기 위한 원정을 단행하여 키예프를 잠시 점령한 바 있다.
즉위와 사망
1024년 하인리히 2세 황제가 사망한 뒤, 볼레스와프 1세는 1025년 4월 18일 그니에즈노에서 폴란드 역사상 최초의 국왕 대관식을 거행하고 폴란드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를 계기로 폴란드는 공국에서 왕국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대관식이 거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025년 6월 17일에 사망하였으며, 그의 왕위는 아들 미에슈코 2세가 승계하였다.
평가
볼레스와프 1세 흐로브리는 폴란드를 중부 유럽의 주요 국가로 성장시킨 통치자로 평가된다. 그의 치세는 영토 확장, 기독교의 정착, 교회 조직의 독립, 그리고 왕국의 기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폴란드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하였다. 그의 초상은 폴란드의 20 즈워티(20 złoty) 지폐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다만 생애 초기 구체적인 활동 기록과 일부 즉위 과정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당대 사료가 충분하지 않아 일부 세부 정보는 추정에 근거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