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보시라이

보시라이(薄熙来, Bo Xilai, 1949년 7월 3일 ~ )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전직 정치인이다. 중국공산당 혁명 원로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차남으로, 이른바 '태자당'(고위 혁명 원로 자제 그룹)의 핵심 인물로 분류되었다. 베이징대학 역사학과 학사, 중국사회과학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보시라이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다롄(大連) 시장을 지내며 도시 개발과 외자 유치에 힘써 '다롄의 세 가지 보물(축구, 패션, 보시라이)'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01년 랴오닝성 성장, 2004년 상무부장을 역임했으며, 2007년 충칭(重慶)시 당위원회 서기로 부임하여 중앙정치국 위원에 올랐다. 충칭 시기에는 '창홍타흑(唱紅打黑, 붉은 노래를 부르고 검은 세력을 친다)'이라는 구호 아래 조직폭력배와 부패 공무원을 단속하는 한편, 저가 임대주택 공급 등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한 '충칭 모델'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12년 2월, 측근이었던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공안국장이 미국 영사관에 망명을 시도한 사건이 터지면서 위기에 빠졌다. 조사 결과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Neil Heywood)를 독살한 사실이 드러났고, 보시라이는 이 사건의 은폐를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보시라이의 직무를 정지하고 조사에 착수했으며,同年 9월 당적과 공직에서 박탈(쌍개, 雙開)되었다.

2013년 8월 산둥성 지난시 중급인민법원에서 수뢰(약 2,179만 위안), 횡령(약 500만 위안),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며, 9월 22일 무기징역 및 정치권리 종신박탈, 전 재산 몰수를 선고받았다. 항소는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으며, 현재 베이징 친청(秦城)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몰락은 중국공산당 내 계파 갈등과 반부패 운동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