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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

보빙사(報聘使)는 외국 사신의 방문에 대한 답방(答訪) 형식으로 파견하는 사절단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일반적으로 1883년(고종 20년) 조선이 미국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을 가리키는 용어로 통용된다.

개요

보빙(報聘)은 "답례로 빙문(聘問)하다"라는 고전적 한자어로, 빙문은 나라 사이에 격식을 갖추어 사신을 파견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보빙사라는 명칭은 격식을 갖추어 답례로 파견하는 외교 사절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파견 배경

1882년(고종 19년) 5월 조선과 미국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듬해인 1883년 4월 미국의 초대 주한 공사 루셔스 하우드 푸트(Lucius H. Foote)가 조선에 부임하자, 고종은 이에 대한 답례와 양국 간 친선 도모를 목적으로 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하였다.

의례적 목적 외에 보빙사 파견의 실질적 목적은 다음과 같다.

  • 근대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미국의 협력을 얻기 위함
  • 임오군란 이후 강화된 청나라의 간섭에 대응하여 미국으로부터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공인받고자 함
  • 조선 정부의 외교·교육 분야에 미국인 고문관과 군사교관을 초빙하고자 함

구성원

보빙사의 주요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 전권대신: 민영익(閔泳翊)
  • 부대신: 홍영식(洪英植)
  • 종사관: 서광범(徐光範)
  • 수행원: 유길준(兪吉濬), 고영철(高永喆), 변수(邊燧), 현흥택(玄興澤), 최경석(崔景錫)
  • 통역: 중국인 우리탕, 참찬관 미국인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 비공식 수행원: 일본인 통역관 미야오카 쓰네지로

주요 활동

보빙사 일행은 1883년 7월 14일 사폐(辭陛)한 뒤 7월 16일 인천을 출발하여 일본을 거쳐 9월 2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이후 대륙횡단철도를 타고 미국 동부로 이동하여, 9월 18일 뉴욕에서 체스터 A. 아서(Chester A. Arthur) 미국 대통령을 접견하고 국서를 전달하였다.

일행은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세계박람회, 시범농장, 방직공장, 공립학교, 병원, 우체국, 육군사관학교, 국무부, 농무부 등 각종 공공기관과 시설을 시찰하였다. 특히 워싱턴에서 내무성 교육국장 이튼(J. Eaton)으로부터 미국의 교육제도를 소개받았으며, 이는 이후 육영공원 설립에 영향을 주었다.

공식 일정을 마친 뒤 일행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귀국하였다. 홍영식 일행은 태평양 항로로 귀국하여 1883년 11월 21일에 복명하였고, 민영익 일행은 유럽을 시찰한 뒤 1884년 5월 9일에 복명하였다.

의의와 평가

보빙사가 견문한 서양의 신문물은 이후 우정국, 농무목축시험장, 육영공원 등의 설립에 영향을 주면서 조선 정부의 개화 정책 추진에 기여하였다. 또한 미국과의 문화적 교류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고종이 의도하였던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지원은 미국의 '불개입' 외교 방침으로 인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후 민영익과 홍영식은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게 되어 1884년 갑신정변에서 서로 대립하는 입장에 서기도 하였다.

보빙사는 조선이 서양을 상대로 파견한 최초의 공식 외교 사절단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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