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로우니차(슬로베니아어: Borovnica, 독일어: Franzdorf)는 슬로베니아 중부 내륜 지방(Inner Carniola)에 위치한 소도시이자 지방 자치체(Občina Borovnica)의 행정 중심지이다. 수도 류블랴나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거리에 위치한다. 보로우니차라는 명칭은 슬로베니아어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이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지리 및 행정 구역
보로우니차 자치체의 면적은 약 42.3km²이며, 2002년 인구 조사 기준 자치체 전체 인구는 3,839명, 인구 밀도는 약 90.8명/km²이다. 자치체의 중심지인 보로우니차 마을 자체의 면적은 약 0.96km²이며, 2020년 기준 인구는 약 2,674명이다. 마을의 해발 고도는 약 298.6m이다. 마을은 류블랴나 평원(Ljubljansko barje)의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주변으로는 플라니나(735m), 리포베츠(752m), 벨리키 트레벨니크(815m), 말리 트레벨니크(807m) 등의 구릉이 둘러싸고 있다.
지명의 유래
지명의 기원에 따르면, "보로우니차"는 슬로베니아어의 "보르(bor)"에서 파생되었으며, 이는 "소나무"를 의미한다. 따라서 보로우니차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소나무 마을" 또는 "소나무가 있는 냇가"를 뜻하는 *보로브나(Borovna)*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과거 이 지역에 소나무 숲이 널리 분포했던 데서 비롯된 지명으로 추정된다. 이 명칭은 1260년 문헌에 "Vronitz"로 처음 기록되었으며, 이후 1300년 "Vreuncz", 1313년 "apud Vraniciam", 1366년 "Vraunitz" 등으로 변천해 왔다. 독일어 명칭인 "프란츠도르프(Franzdorf)" 역시 슬로베니아어 명칭이 변형된 형태이다.
역사
보로우니차 지역에는 1856년 오스트리아 남부 철도(Austrian Southern Railway)의 일부로 높이 48m의 철도 고가교(바이아둑트, viaduct)가 보로우니차 계곡을 가로질러 건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 1942년 6월 28일 밤, 파르티잔 부대가 이탈리아로 이송 중이던 수감자를 실은 열차를 공격하여 약 300명을 석방하였다.
- 1944년 8월 26일, 연합군 폭격 작전으로 철도 고가교가 파괴되었으며, 이때 마을 주민 30명도 사망하였다.
- 전쟁 종전 직후 보로우니차에는 이탈리아 포로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열악한 위생 조건으로 인해 약 200명의 수감자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용소는 1946년 8월 중순에 폐쇄되었다.
종교 시설
보로우니차의 교구 교회는 성 마르가리타(Saint Margaret)에게 봉헌되었으며, 류블랴나 대교구에 속한다. 이 위치에 교회가 있었던 사실은 14세기 중반부터 확인되며, 현재의 건물은 1829년에 건축된 것이다.
주요 인물
보로우니차 출신 또는 연고가 있는 주요 인물로는 문학사가 마르야 보르슈니크(1906~1982), 작곡가 이반 키페를레(1856~1943), 작가이자 극작가인 레오폴트 수도홀찬(1928~1980), 화가 미르코 레베즈(1912~1992) 등이 있다.
교통 및 현재 상황
2022년에는 집중 호우로 인해 보로우니차 자치체 일대에서 국지적인 심각한 홍수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보로우니차는 슬로베니아의 독립된 지방 자치체로 운영되고 있으며, 공식 웹사이트(borovnica.si)를 통해 행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영어 위키백과(Borovnica, Borovnica 문서 및 Municipality of Borovnica 문서), 슬로베니아 통계청(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lovenia)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