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감(別監)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존재한 관직의 일종으로, '별도로 감독한다'는 의미의 한자어이다. 시대와 소속 관청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졌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별감은 중앙과 지방의 각 관아 및 여러 도감(都監)에 설치된 관직이었다. 1105년(예종 즉위년)에 군사 지휘를 위해 참상관(參上官)을 동계행영별감(東界行營別監)에 제수한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국왕의 명령을 각 도에 전달하는 선지별감(宣旨別監)·왕지별감(王旨別監), 몽고군 방어를 위해 산성에 파견된 산성별감(山城別監)·산성방호별감(山城防護別監), 안렴사(按廉使)를 보좌하여 지방 통치를 담당한 별감, 둔전 경영을 위한 농무별감(農務別監), 인구 조사를 위한 제도계점별감(諸道計點別監), 권세가가 점탈한 토지와 인구를 쇄환하기 위한 제도쇄권별감(諸道刷卷別監), 국왕의 질병이나 천재지변과 관련된 제사를 위해 파견된 외산기은별감(外山祈恩別監)·마장제고별감(馬場祭告別監) 등 다양한 종류가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비해 별감의 종류가 줄어들었으나,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궁중 관청 소속의 별감이다. 장원서(掌苑署) 소속으로 원(園)·유(囿)·화초·과물 등의 관리를 담당하였고, 액정서(掖庭署) 소속으로 왕명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경국대전》 형전(刑典)에 따르면 궁궐 내 별감의 수는 모두 86명이었으며, 대전(임금 처소)과 중궁전(중전 처소), 세자궁과 세손궁에 각각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이들은 노란 초립에 홍색포를 입은 화려한 복색으로 유명하였으며,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주사거배(酒肆擧盃)>, <야금모행(夜禁冒行)>, <유곽쟁웅(遊廓爭雄)> 및 유숙의 <대쾌도> 등에 그 모습이 등장한다.
둘째, 유향소(留鄕所) 소속의 별감이다. 1400년(태종 즉위년) 이전에 고려의 사심관(事審官) 제도와 관련되어 유향소가 설치되면서 비롯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좌수(座首)를 도와 지방 풍속의 조정과 향리(鄕吏)를 규찰하는 역할을 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지방 행정 관아의 일부로 편입되어 제수(祭需)·전곡·형옥(刑獄)·봉수(烽燧)·도로와 교량 보수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별감의 수는 시기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었으나, 주(州)·부(府)는 4인, 군(郡)은 3인, 현(縣)은 2인 내외였다. 선발은 좌수가 향집강·장의·유사 등과 상의하여 향안(鄕案)에 등록된 향원 중 30세 이상으로 문학과 인격을 갖춘 인물을 추천하여 선출하였다.
셋째, 국초 이래로 변방 개척이나 변란 토벌에 공이 있는 고위 관리를 위로하기 위해 파견된 선위별감(宣慰別監), 각 도의 군용(軍容)이나 토지 등급을 시정하기 위해 파견된 군용점고별감(軍容點考別監)이나 전제별감(田制別監) 등 임시적인 성격의 별감도 존재하였다.
한편, 사내 하인들끼리 서로를 존대하여 부르는 호칭으로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