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가(別駕)는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서 사용된 관직의 하나이다. '별가'라는 명칭은 한자어 '別駕'에서 비롯되었으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별도의 수레(가마)를 타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상급 관리의 순행이나 이동 시 그를 보좌하는 관원이 별도의 수레를 타고 수행한 데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의 별가
중국에서는 한(漢)나라 때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별가종사사(別駕從事史) 또는 별가종사(別駕從事)의 줄임말로 사용되었다. 별가는 주자사(州刺史)를 보좌하는 관원으로, 주자사의 순찰 시 동행하면서 업무를 보조하였다. 현대의 지방 행정 단위로 비교하자면 도지사의 수석 보좌관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이해된다.
한국에서의 별가
신라
신라에서는 별가가 각 주(州)의 차관직으로 설치되었으며, 당초에는 주조(州助) 또는 주보(州輔)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러나 신라 하대의 금석문에는 '별가'로 표기된 사례가 흔히 등장하여, 9세기의 어느 시기에 이르러 중국 당(唐)나라의 제도를 본떠 명칭을 개편한 것으로 추정된다. 각 주에 1인씩 두었으며, 나마(奈麻) 이상 중아찬(重阿飡)까지의 관등을 가진 자가 이 직책을 맡았다.
고려
고려시대에는 별가가 중추원(中樞院)에 10인이 배속되어 있던 이속직(吏屬職)이었다. 이들은 중앙관료 및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의 수행원 구실을 하였다. 당시 별가에 임명되는 인물은 주로 향리(鄕吏)의 자손으로서 능력이 부족하고 인품이 바르지 못한 자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구체적인 예로, 1144년(인종 22)에 척준경(拓俊京)이 계림공(鷄林公, 뒤의 숙종)의 종자가 되었다가 중추원별가에 임용된 사례가 있다. 경제적 처우에 관해서는 1076년(문종 30)의 전시과(田柴科)에서 별가가 제15과에 해당하여 전지 25결(結)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조선시대에는 별가가 승정원(承政院)에 소속된 서리(書吏)직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의 별가는 이전 시기와 달리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원으로 그 지위가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
종합
별가는 시기와 국가에 따라 그 역할과 위상이 달랐으나, 공통적으로 상급 관료나 행정 기관을 보좌하거나 수행하는 관직으로 기능하였다. 중국에서는 지방 장관의 보좌관으로, 신라에서는 각 주의 차관으로, 고려와 조선에서는 중앙 관청에 속한 이속 또는 서리직으로 운용된 바 있다. 이와 같은 기록은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공신력 있는 자료에서 일관되게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