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용(卞熙瑢, 1894년~1966년 3월 15일)은 일제강점기의 사회주의 운동가, 독립운동가이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교육가 겸 저술가이다.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호는 일파(一波)이다. 부인은 정치인 박순천(朴順天)이다.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태어나 1917년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이재과(理財科)에 입학하여 1921년 졸업하였다. 일본 유학 시절 조선유학생학우회에서 활동하였고, 1919년 2·8독립선언에 참여하여 일제 경찰에 일시 구금되었다. 이후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코스모구락부, 북성회(北星會)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김약수 등과 함께 《대중시보》 창간에 참여하고 《전진(前進)》의 편집 발행인을 지냈다.
1924년 귀국하여 《시대일보》 학예부장을 지내고, 조선청년총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5년 조선공산당 초급행정위원을 지냈으며, 1927년 신간회(新幹會) 고령지회 설립을 주도하고 지회장에 선임되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경상남도 진양군 일대에서 광산을 경영하였다.
8·15광복 직후 1945년 9월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하였고, 1947년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되어 법정대학장을 지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재경교수단 구국선언과 4·25 교수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같은 해 5월 성균관대학교 제4대 총장에 취임하였다(1961년 7월 퇴임). 1963년 민주당 전임고문을 지냈고, 1964년 문교부 교육행정특임촉탁위원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