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호(邊光鎬, 1890년~1958년 5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호는 만헌(晩軒)이며,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초명은 변진호(邊縉鎬)이고, 자는 문규(文圭)이다.
생애
1890년(일부 기록에는 1889년)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군 나포면 나포리에서 아버지 변기탁과 어머니 성주 현씨 사이의 9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19년경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경성방직주식회사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1년 군산교육후원회 임원으로 활동하였고, 1922년 1월에는 군산 경신구락부(庚申俱樂部)에서 설립한 경신상업야학원(庚申商業夜學院)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1923년 6월 군산부에 설립된 민립대학(民立大學) 지방부 설립에 집행위원으로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군산지역에서 정수영 등이 창립한 여명회(黎明會)의 연구부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5월 친일단체인 군산 간화회(懇和會) 창립에 참여하여 부평의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해방 후인 1945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정부장 조완구의 요청과 독립운동가들의 제청으로 결성된 애국금헌성회(愛國金獻誠會)의 중앙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민주국민당(民主國民黨)에 입당하여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정치 활동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전라북도 군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2년 민주국민당의 중앙위원이자 정책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5월 전북 출신 국회의원들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 및 장면 국무총리에게 전북지사 이성득의 실정을 지적하며 파면을 요구하는 청원을 올렸다.
1953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생한 정치파동 당시, 자유당 정권이 추진한 발췌개헌안(拔萃改憲案)에 결사 반대하였다. 국회의원들이 경찰의 안내를 받아 발췌개헌안을 기립 표결로 통과시키려 할 때, 변광호는 끝까지 자리에 앉아 일어서지 않음으로써 의원내각제 개헌안을 사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4년 이후 재야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민주당 창당 작업에 참여하여 민주당 신당발기준비위원회 조직위원회 간사, 민주당 중앙위원회 중앙상무위원, 민주당 군산시당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사망
1958년 5월 1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일부 자료에는 사망 연도를 1959년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참고 사항
동명이인으로, 현대의 변호사 변광호(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부장검사 역임, 법무법인 YK 고문변호사)와 스트레스 면역학 연구자이자 저서 《E형 인간 성격의 재발견》을 펴낸 변광호 박사(새빛노인요양병원 원장)가 존재하므로 구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