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리사리우스 (고대 그리스어: Βελισάριος, 라틴어: Flavius Belisarius, c. 505년 ~ 565년)는 6세기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가장 저명한 장군 중 한 명으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의 치세 동안 제국의 영토 재정복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흔히 "마지막 로마인" 또는 "마지막 위대한 로마 장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생애와 경력: 벨리사리우스는 로마 시대의 트라키아 또는 일리리아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측근이자 군 지휘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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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 폭동 진압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대항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을 때, 벨리사리우스는 마기스테르 밀리툼(magister militum, 군사령관)인 문두스(Mundus)와 함께 반란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황권을 안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학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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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전쟁 (533년~534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지시로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재정복하기 위한 원정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카르타고 근처에서 아드 데키뭄(Ad Decimum) 전투와 트리카마룸(Tricamarum) 전투에서 반달군을 격파하고 겔리메르(Gelimer) 왕을 사로잡아 반달 왕국을 단기간에 멸망시켰다. 이 승리로 인해 그는 '반달리쿠스(Vandalicus)'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서로마 제국이 상실했던 핵심 영토를 되찾음으로써 제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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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전쟁 (535년~540년, 544년~548년): 이탈리아 반도에 자리 잡은 동고트 왕국을 정복하기 위한 원정에 나섰다. 벨리사리우스는 시칠리아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본토를 침공하여 로마를 탈환하는 등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선보였다. 특히 로마 방어전에서는 적은 병력으로 대규모 동고트군을 오랫동안 막아내며 그의 방어 능력을 입증했다. 그러나 황제의 견제와 지원 부족, 그리고 동고트족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이탈리아 재정복은 장기화되었고, 그는 나중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소환되기도 했다. 두 번째 이탈리아 원정에서는 처음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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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전선 및 말년: 고트 전쟁 외에도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동부 전선에서도 활약했으며, 말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위협하는 불가르족 침략을 격퇴하는 등 노년에도 제국을 수호했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의심을 받기도 했으며, 한때 반역죄로 기소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실각하기도 했으나, 결국 무죄로 밝혀져 복권되었다. 그가 눈이 멀어 콘스탄티노폴리스 거리에서 구걸했다는 이야기는 훗날 민담으로 전해지지만,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다.
평가: 벨리사리우스는 당대 최고의 군사 전략가이자 전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는 적은 병력으로도 뛰어난 지휘력과 혁신적인 전술을 통해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병사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그의 충성심은 황제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았으며, 그의 군사적 업적은 비잔틴 제국이 서로마 제국의 옛 영광을 일시적으로나마 되찾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벨리사리우스의 삶과 업적은 비잔틴 제국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인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