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계 독일인(독일어: Vietnamesen in Deutschland)은 베트남에 민족적·문화적 기원을 둔 독일인 및 독일 거주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구 통계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베트남 국적자 및 독일로 귀화한 베트남계 인구는 약 207,000명으로 집계되었다. 1981년부터 2007년까지 베트남에서 독일로 귀화한 인원은 41,499명이다. 이 외에도 독일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약 40,000명의 베트남계 불법체류자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용 언어는 독일어와 베트남어이며, 주요 종교는 불교와 로마 가톨릭교회이다.
이민의 역사
베트남계 독일인의 독일 이주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이루어졌다.
첫째, 서독으로의 유입은 1970년대 후반 베트남 전쟁 이후 발생한 보트피플(boat people) 난민을 통해 시작되었다. 1978년 12월 163명의 베트남 난민이 니더작센 주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서독 정부와 시민사회(하인리히 뵐 등이 설립한 '베트남을 위한 보트 협회' 등)의 구조 활동을 통해 약 4만 6천여 명의 베트남인이 서독에 정착하게 되었다.
둘째, 동독으로의 유입은 사회주의 국가 간 노동 협정에 따른 계약 노동자(손님노동자) 파견을 통해 이루어졌다. 1980년 동독과 베트남 간 노동협정이 체결된 이후, 1989년 독일 통일 당시까지 약 7만 명의 베트남 노동자가 동독에서 거주하였다. 이들은 주로 섬유 공장 등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했다.
독일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산업 시설이 대거 문을 닫으면서 많은 베트남 계약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독일 연방정부는 귀국하는 노동자들에게 보상비와 무료 항공권을 제공하는 사실상의 강제 송환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약 4만 5천 명에서 5만 명 사이의 베트남 노동자가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잔류한 이들은 식료품점, 꽃집, 스낵바 등의 자영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1997년 독일 정부의 이민 정책 변화로 잔류 베트남인들은 영주권을 취득하고 가족을 초청할 수 있게 되었다.
차별과 폭력
베트남계 독일인들은 독일 사회에서 인종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주요 사건으로는 함부르크 빌브로크 살인 사건(1980년), 호이어스베르다 폭동(1991년), 로스톡 리히텐하겐 폭동(1992년)이 있다. 특히 1992년 로스톡-리히텐하겐에서 발생한 '해바라기 하우스' 방화 사건은 베트남 노동자 120여 명과 망명 신청자 300여 명이 거주하던 건물이 네오나치의 공격을 받아 불에 탄 사건으로, 전국적인 충격을 주었다.
사회적 통합과 주요 인물
베트남계 독일인들은 독일 사회에서 '모범 이민자'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자녀 교육에 대한 높은 열의로 유명하다. 2008년 조사에 따르면 베트남계 자녀의 인문계 고등학교(김나지움) 진학률은 약 60%로, 당시 전체 이주민 자녀 평균(20% 미만)을 크게 상회했다.
주요 인물로는 필리프 뢰슬러(Philipp Rösler)가 있다. 1973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독일인 부부에게 입양된 그는 자유민주당(FDP) 당수, 독일 부수상, 연방경제기술부 장관, 연방보건부 장관을 역임하며 독일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계 장관이자 부수상이 되었다. 또한 저널리스트 바네사 부(Vanessa Vu)와 민 투 짠(Minh Thu Tran)은 팟캐스트 '라이스 앤 샤인'(Rice and Shine)을 통해 베트남계 독일인의 정체성, 인종차별, 이민사 등의 주제를 다루며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