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베르-고무라 각서

베베르-고무라 각서는 1896년 4월 25일 당시 러시아 제국의 대한제국 주재 공사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Karl Ivanovich Weber)와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주재 공사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가 조선의 수도 한성(현 서울)에서 체결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임시 협정이다. 이 각서는 아관파천 이후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급증하고 일본의 입지가 약화되던 시점에서 양국이 조선의 정세 안정과 각자의 이권 보호를 위해 마련한 합의였다.


배경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청에 반환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약화되었다. 조선 내부에서는 친일 세력의 득세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미사변, 1895년) 발생 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1896년 2월)이 발생하면서 일본의 영향력은 급격히 위축되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아관파천 이후 조선의 친일 내각이 붕괴하고 친러 내각이 수립되면서, 일본은 조선 내에서의 기존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의 혼란을 수습하고 양국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러시아와 일본은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주요 내용

베베르-고무라 각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조선 내 질서 유지: 양국은 조선 내의 질서 유지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며, 특히 아관파천 직후 불안정했던 조선의 정세를 안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 훈련대 해산 및 새 친위대 조직: 일본의 지원을 받았던 훈련대(조선군 내 친일 성향 부대)를 해산하고, 러시아 군사 고문의 지도를 받아 새로운 친위대 및 경찰 부대를 조직하는 것을 조선 정부에 건의한다. 이는 러시아의 조선 군사 개입을 합법화하는 의미가 있었다.
  • 공사관 경비병력 유지:
    • 일본은 공사관 및 부산, 원산 등 일본 거류민이 많은 개항장에 최대 8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으나, 조선의 질서가 회복된 후에는 200명으로 축소한다.
    • 러시아는 공사관에 1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킨다.
  • 조선 내정 불간섭: 양국은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자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간섭이 계속되었다.)

의의와 한계

베베르-고무라 각서는 아관파천 이후 조선에서 급증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일본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협정이었다. 일본은 이 각서를 통해 일단 러시아의 우위를 인정하며 숨을 고르고, 향후 조선에서의 입지를 회복할 시간을 벌었다. 러시아 역시 조선의 안정화를 통해 자국의 이권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이 각서는 근본적으로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의 주권을 무시하고 자국의 이권을 위한 타협을 이룬 것에 불과했다. 이 각서 체결 이후에도 양국은 조선을 둘러싼 경쟁을 멈추지 않았고, 이는 1898년 니시-로젠 각서(西-Rosen Memorandum)로 이어지며 결국 러일전쟁(1904년)의 배경이 되었다. 이 각서는 조선의 외교적 자주성이 크게 훼손되었던 제국주의 시대의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같이 보기

  • [[아관파천]]
  • [[을미사변]]
  • [[니시-로젠 각서]]
  • [[러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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