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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니케 4세 에피파네이아

베레니케 4세 에피파네이아(그리스어: Βερενίκη Δ', 영어: Berenice IV Epiphaneia, 기원전 70년대~기원전 55년)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왕이자 헬레니즘 시대의 파라오이다. 아버지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이며, 어머니는 클레오파트라 5세 트뤼파이나이다. 이후 로마와의 관계로 유명해진 클레오파트라 7세의 누나이자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아르시노에 4세의 자매이다. 그녀는 기원전 58년부터 기원전 55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생애와 통치

기원전 59년, 로마 집정관이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 합병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가 막대한 뇌물을 제공하면서 로마는 그를 이집트의 합법적인 왕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 조약은 키프로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기원전 58년 로마가 키프로스를 합병하면서 아울레테스의 형제는 자살에 몰렸다. 키프로스의 상실과 과도한 정치적 비용으로 인한 경제 악화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민중의 불만을 촉발하였다. 진압에 실패한 아울레테스는 기원전 58년 로마로 군사 지원을 요청하러 떠났고, 그의 부재 중 알렉산드리아 민중은 그를 폐위시키고 그의 딸 베레니케 4세를 여왕으로 추대하였다.

베레니케 4세는 처음에는 고대 역사가 포르피리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 6세 트뤼파이나와 공동 통치하였다. 다만 일부 현대 학자들은 이 클레오파트라 6세가 아울레테스의 아내인 클레오파트라 5세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클레오파트라 트뤼파이나는 기원전 57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베레니케 4세는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여성 단독 통치자로서 그녀는 남성 공동 통치자의 존재가 요구되었다. 베레니케 4세의 측근들은 먼저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자들과의 혼인을 시도하였으나 여러 차례 무산되었다. 세 번째로 셀레우코스 왕실과 관련된 인물인 셀레우코스(일명 '키비오삭테스', '염장어 장수'라는 뜻의 별명)와 결혼하였으나, 베레니케 4세는 그의 저속함과 교양 부족을 견디지 못해 결혼 수일 만에 그를 살해하였다. 이후 궁정은 폰토스의 그레이트 마더 신전의 제사장이었던 아르켈라오스를 신랑감으로 선택하였고, 그는 폰토스 왕 미트리다테스 6세의 아들이라고 자칭하였다(스트라본은 그의 아버지가 미트리다테스 6세의 부하 장수였다고 기록한다). 기원전 56년에서 55년 겨울, 아르켈라오스는 이집트로 와서 베레니케 4세와 결혼하고 왕으로 선포되었으나, 공식적인 공동 통치자로 인정받았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으며, 베레니케 4세가 그에게 실질적인 공동 통치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최후

기원전 55년, 로마 장군 아울루스 가비니우스가 이끄는 로마 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하였다. 아르켈라오스는 왕국을 방어하려다 전사하였고, 가비니우스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를 복위시켰다. 이에 따라 베레니케 4세는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한 죄로 처형되었다. 그녀의 죽음 이후 아울레테스는 왕위를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공동으로 물려주었다.

관련 문헌

베레니케 4세에 대한 주요 1차 사료로는 스트라본(12.3.34, 17.1.11), 아피아누스(Mithrid. 114), 플루타르코스(Antony 3.2-3.6), 디오 카시우스(39.12-39.14, 39.55-39.5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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