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니케 4세 에피파네이아

베레니케 4세 에피파네이아 (그리스어: Βερενίκη Δ΄ Ἐπιφάνεια, 기원전 77년경 – 기원전 55년)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여왕이다. 그녀는 기원전 58년부터 기원전 55년까지 약 3년간 이집트를 통치했으며,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7세의 언니였다. 그녀의 칭호인 "에피파네이아"(Ἐπιφάνεια)는 "신이 현현한 자" 또는 "신이 나타난 자"라는 의미이다.


생애 및 즉위

베레니케 4세는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Ptolemy XII Auletes)와 클레오파트라 5세 트뤼파이나(Cleopatra V Tryphaena)의 딸로 추정된다. 그녀에게는 클레오파트라 6세 트뤼파이나(일부 학자는 클레오파트라 5세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함), 아르시노에 4세, 클레오파트라 7세, 프톨레마이오스 13세, 프톨레마이오스 14세 등의 형제자매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로마의 강력한 영향력에 의존하며 시민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인기가 없었다. 기원전 58년, 로마에 의한 키프로스 합병에 대한 이집트 시민들의 분노와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무능함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은 반란을 일으켰고,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로마로 강제 망명하게 된다.

아버지의 부재 중에 베레니케 4세는 여왕으로 추대되어 즉위했다. 처음에는 어머니 또는 자매인 클레오파트라 6세 트뤼파이나와 공동 통치했을 가능성도 있으나, 클레오파트라 6세가 일찍 사망하거나 제거되면서 곧 베레니케 4세가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통치와 결혼 시도

베레니케 4세는 아버지와 달리 로마에 의존하지 않고 이집트의 독립성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녀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전통에 따라 공동 통치할 남편을 찾으려 했으나 적절한 인물을 찾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왕자와 결혼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폰토스 출신의 아르켈라오스(Archelaus)와 결혼했다. 아르켈라오스는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의 장군이었던 아르켈라오스의 후손이며, 유력한 귀족이자 신관이었다.

몰락과 죽음

한편 로마로 망명했던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로마 공화정의 유력자들, 특히 폼페이우스의 지지를 얻어 왕위 복귀를 꾀했다. 막대한 뇌물과 정치적 압력이 작용한 끝에, 기원전 55년 시리아 총독 아울루스 가비니우스(Aulus Gabinius)는 로마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를 침공했다.

베레니케 4세와 그녀의 남편 아르켈라오스는 로마군에 대항했지만,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 앞에 패배했다. 아르켈라오스는 전투 중 전사했고, 알렉산드리아는 로마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왕위를 되찾은 후, 자신의 복귀를 방해했던 딸 베레니케 4세를 즉시 처형했다. 이후 그의 다른 자녀들인 클레오파트라 7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아버지의 공동 통치자로 즉위하게 된다.

베레니케 4세의 짧은 통치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말기의 불안정성과 로마의 이집트 내정 간섭이 심화되던 시기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함께 보기

  • 프톨레마이오스 12세 아울레테스
  • 클레오파트라 7세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헬레니즘 이집트
  • 로마 공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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