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누스티아노 카란사 (Venustiano Carranza, 1859년 12월 29일 ~ 1920년 5월 21일)는 멕시코의 혁명가이자 정치가로, 멕시코 혁명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멕시코 혁명 시기에 입헌주의 운동을 이끌었으며, 1917년 멕시코 헌법을 제정하고 공포한 뒤 멕시코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생애 및 초기 경력 카란사는 1859년 멕시코 코아우일라 주 쿠아트로시에네가스에서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법률을 공부했지만 주로 가문의 농업 사업과 정치에 종사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지역 정치에 참여했으며, 점차 자유주의적 성향을 띠게 되었다. 20세기 초, 멕시코를 장기간 통치하던 포르피리오 디아스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멕시코 혁명에서의 역할 1910년 프란시스코 마데로가 디아스 독재에 대항하여 혁명을 일으키자, 카란사는 마데로를 지지하며 혁명에 동참했다. 마데로가 대통령이 된 후 카란사는 전쟁부 장관 및 코아우일라 주지사를 지냈다.
그러나 1913년 빅토리아노 우에르타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마데로를 암살하고 정권을 장악하자, 카란사는 우에르타 정권에 맞서 강력히 반대했다. 그는 헌법 질서의 수호를 주장하며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헌법군'(Ejército Constitucionalista)을 결성하고 입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판초 비야, 에밀리아노 사파타, 알바로 오브레곤 등 다른 혁명 지도자들과 함께 우에르타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혁명 지도자들 간의 이념 및 권력 투쟁이 심화되었다.
대통령 재임 우에르타 축출 후, 헌법군을 이끌었던 카란사는 다른 혁명 파벌들과의 복잡한 내전 끝에 멕시코의 통제권을 확보했다. 그는 1914년 대통령직을 잠정적으로 승계했으며, 이후 사파타와 비야 세력과 대립하며 정부의 권위를 강화해 나갔다.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1917년 멕시코 헌법의 제정이다. 이 헌법은 토지 개혁, 노동자의 권리, 교육의 세속화, 국가의 광물 자원 소유권 등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현대 멕시코의 법적 기반이 되었다. 카란사는 이 헌법에 따라 1917년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여전히 혁명 파벌 간의 갈등과 사회적 불안으로 얼룩져 있었다.
몰락과 암살 1920년 대통령 임기 말, 카란사는 자신의 후계자로 민간인 후보인 이그나시오 보닐라스를 지명하려 했다. 이는 알바로 오브레곤을 비롯한 강력한 군부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고, 오브레곤이 '아과 프리에타 계획'(Plan de Agua Prieta)을 발표하며 카란사 정부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군사적 압박 속에 카란사는 수도 멕시코시티를 떠나 베라크루스 주로 피신하던 중, 1920년 5월 21일 푸에블라 주의 틀락스칼란통고(Tlaxcalantongo)라는 작은 마을에서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멕시코 혁명의 폭력적인 시대를 마감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유산 베누스티아노 카란사는 멕시코 혁명의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 인물로 평가된다. 비록 그의 통치가 여러 반란과 갈등으로 얼룩지고, 많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그가 주도하여 제정된 1917년 헌법은 멕시코의 사회, 경제, 정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도 멕시코의 기본법으로 남아있다. 그는 현대 멕시코 국가의 초석을 다지고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