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가면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매년 열리는 베네치아 사육제(Carnevale di Venezia)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이자 상징이다. 베네치아 사육제는 사순절(Lent)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날까지 약 2주에서 18일 동안 진행되는 축제로, 브라질 리우 카니발, 프랑스 니스 카니발과 함께 세계 3대 사육제로 꼽힌다. 이 축제는 화려한 가면과 의상으로 유명하여 '가면 축제'라고도 불린다.
역사
베네치아에서 가면의 사용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268년 5월의 법령에는 가면을 쓴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향수를 채운 달걀을 던지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같은 문서에서 가면을 쓴 사람의 도박을 금지하는 조항도 확인된다. 1458년에는 남성들이 가면을 쓰고 변장한 상태로 수녀원을 방문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었다. 1608년에는 베네치아인과 외국인 모두 사육제 기간과 공식 연회에서만 가면을 착용할 수 있도록 제한되었다. 18세기에는 가면을 쓸 수 있는 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그리스도 승천일부터 성탄절까지, 그리고 산토 스테파노 축제(12월 26일)부터 참회의 화요일 자정까지로 한정되었다.
베네치아 사육제 자체의 기원에 대해서는 1092년 비탈레 팔리에르 총독 재임 시절의 기록이 가장 오래된 언급으로 전해지나, 오늘날의 축제는 1162년 베네치아 공화국이 아퀼레이아(Aquileia)와의 분란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벌어진 축제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296년 베네치아 공화국 의회는 사순절 전날을 공식 축일로 지정하였고, 이후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축제는 더욱 발전하였다. 18세기에 그 화려함이 절정에 달했으나, 1797년 오스트리아가 베네치아를 점령하면서 가면 착용이 금지되었고, 1930년대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에 의해 완전히 금지되었다. 현대의 베네치아 사육제는 1979년 베네치아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공식 부활하였다.
가면의 사회적 의미
베네치아 가면은 신분과 성별, 사회적 계급을 감추는 익명성을 제공하였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엄격한 계급 사회였던 베네치아에서 가면은 귀족과 평민이 잠시나마 계급의 굴레를 벗고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게 하는 도구였다. 가면 제작자들(마스케라리, mascherari)은 1436년 4월 10일 자체 법령과 길드를 인정받아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렸으며, 화가 조합의 일원으로 분류되었다.
가면의 종류
베네치아 가면은 여러 가지 독특한 스타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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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타(Bauta): 얼굴 전체를 덮는 흰색 가면으로, 돌출된 코와 두꺼운 눈썹 부위, 돌출된 턱(부리 형태)이 특징이다. 입 부분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아 착용자가 가면을 벗지 않고도 말하고 먹고 마실 수 있다. 보통 검은색 삼각모(트리코르노)와 검은색 망토(타바로)와 함께 착용하였다. 18세기에는 베네치아 정부에 의해 규제된 표준화된 사회적 가면이 되었으며, 특정 정치적 의사 결정 행사에서 모든 시민이 익명으로 참여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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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나(Colombina): 눈, 코, 윗볼 부분만을 덮는 반쪽 가면(하프 마스크)이다. 금, 은, 크리스털, 깃털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가면의 이름은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즉흥극)의 등장인물인 콜롬비나(하녀)에서 유래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이 캐릭터의 여배우가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이 완전히 가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이 형태의 가면이 제작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여성용이었으나 현재는 남녀 공용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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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코 델라 페스테(Medico della peste, 페스트 의사): 긴 부리 모양의 가면으로, 원래는 사육제용이 아니라 17세기 프랑스 의사 샤를 드 롬(Charles de Lorme)이 흑사병(페스트) 환자 치료 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고안한 의료용 보호구였다. 흰색이며 속이 빈 부리와 유리 원반으로 덮인 눈구멍으로 구성된다. 부리 안쪽에는 당시 전염이 악취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포말전염설에 따라 꽃이나 달콤한 냄새가 나는 물질을 채웠다. 이 가면이 사육제 가면으로 사용된 것은 현대적인 관습이며, 사육제에서 죽음과 부패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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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타(Moretta) / 세르베타 무타(Servetta muta): 귀족 여성들이 착용하던 검은색 벨벳 타원형 가면으로, 끈이 없고 입 부분이 없다. 16세기 프랑스에서 발명된 비자드(visard) 가면에서 유래하였으나 말할 수 있는 구멍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착용자가 가면 안쪽에 달린 단추나 고리를 입으로 물어 고정하는 방식으로, 말을 할 수 없어 '무타(muta, 말 없는)'라는 명칭이 붙었다. 신분을 완전히 감추기 위해 가면 위에 베일을 쓰는 경우도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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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토(Volto) / 라르바(Larva): 얼굴 전체를 덮는 흰색 가면으로, 현대 베네치아 가면의 상징적인 형태이다. '볼토'는 이탈리아어로 '얼굴'을, '라르바'는 라틴어로 '유령'을 의미한다. 뒷면에 리본으로 고정하며, 종종 금박 장식이나 그림이 더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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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로네(Pantalone):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등장인물에서 유래한 가면으로, 큰 코와 높은 눈썹이 특징인 슬픈 노인의 형상이다. 거의 남성들만 착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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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레키노(Arlecchino, 할리퀸): 검은색 반쪽 가면으로, 원숭이와 같은 코와 이마에 악마의 뿔을 나타내는 혹이 있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잔니(Zanni) 계열 캐릭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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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니(Zanni): 낮은 이마, 불룩한 눈썹, 긴 코가 특징인 가면이다. 코가 길수록 캐릭터가 더 어리석다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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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Gatto, 고양이): 고양이 얼굴을 형상화한 가면이다. 베네치아는 역사적으로 쥐로부터 도시를 보호한 고양이를 중요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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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Jester) / 마타키노(Matachino): 긴 턱과 코를 가진 웃는 얼굴의 가면으로, 종과 함께 장식된 모자를 착용한다.
재료와 제작 방식
전통적인 베네치아 가면은 가죽, 도자기, 또는 전통 유리 기법을 이용하여 제작되었다. 초기의 가면은 디자인과 장식이 비교적 단순하고 상징적이며 실용적인 기능에 중점을 두었다. 현대에는 대부분 석고(게소, gesso)로 틀을 만들어 금박을 입히고 깃털과 보석, 구슬, 레이스 등으로 장식하거나 손으로 그림을 그려 넣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현대의 베네치아 가면
1979년 사육제 부활 이후 베네치아 가면은 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매년 약 300만 명의 방문객이 베네치아 사육제를 찾으며, 축제 기간 동안 산 마르코 광장을 중심으로 가면 퍼레이드, 가장행렬, 가면 경연대회, 가면 무도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가면은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문화 상징이자 기념품으로 자리잡았으며, 전 세계적으로 베네치아 카니발과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