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협회(Virginia Association)는 18세기 미국 식민지 시기 버지니아 식민지에서 채택된 일련의 비수입 협정(non-importation agreement)을 가리키는 역사적 개념이다. 이는 영국 의회의 식민지 과세 정책에 저항하기 위한 상업적 보이콧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
배경
1760년대 중반, 버지니아 식민지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의 비용 부담과 기후 문제로 인한 농작물 수확 감소로 경제 침체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은 1765년 인지세법(Stamp Act) 통과로 더욱 악화되었다. 이후 1767년 타운젠드 법(Townshend Acts)이 통과되자, 버지니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영국 상품 수입을 거부하는 상업적 저항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1769년 버지니아 협회
1769년 버지니아 협회는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주도하고 조지 메이슨(George Mason)이 초안을 작성한 비수입 협정이었다. 워싱턴은 이웃이자 협력자였던 메이슨과 함께 수입 금지 품목 목록을 포함한 협정안을 마련하였다. 1769년 5월,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의 버지니아 버지스 회의(House of Burgesses)에서 이 협정이 통과되었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1769년 9월 1일 이후 특정 영국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다만 버지니아 자체 생산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저가 상품은 예외로 하였다. 또한 협정에는 노예 수입 금지 조항도 포함되었으나, 시행이 수개월간 유예되었다.
이 협정은 영국 의회가 타운젠드 법의 관세를 철회할 때까지 유효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많은 상인들이 보이콧에 참여하지 않아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영국으로의 식민지 수출은 1769년에 38% 감소했지만, 일부 상인들이 협정 조건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영국 생산자들은 여전히 이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영국이 차(tea)를 제외한 모든 품목에서 타운젠드 관세를 철회한 이후 협회는 점차 약화되었고, 1771년에 최종적으로 해체되었다.
1770년 개정 협회
1770년 6월, 메이슨의 제안과 리처드 헨리 리(Richard Henry Lee)의 발의로 개정된 협회가 체결되었다. 개정 협회는 각 카운티에 5인 위원회를 설치하여 협정 위반자의 이름을 공표하도록 하는 등 집행 강화 조치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카운티에서 위원회가 조직되지 않아 집행은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였다. 1771년 7월, 협회는 수입 관세가 부과된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해체되었다.
1774년 버지니아 협회
1774년, 보스턴 차 사건과 강제법(Coercive Acts)으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버지니아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상업적 저항이 전개되었다. 1774년 8월 6일, 제1차 버지니아 회의(First Virginia Convention)의 대표들은 영국 상품 수입 전면 중단과 노예 수입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협회에 서명하였다. 이 협정은 1774년 11월 1일부터 발효되었으며, 담배 수출 중단은 1775년 8월 10일로 유예되었다.
1774년 버지니아 협회는 이후 1774년 9월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에서 채택된 대륙 협회(Continental Association)의 모델이 되었다. 버지니아 대표단은 대륙 협회 초안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미국 독립 혁명 과정에서 식민지 연대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역사적 의의
버지니아 협회는 미국 독립 혁명 이전 시기(1769~1775) 식민지의 영국 제국 정책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저항 수단 중 하나였다. 이는 단순한 상업적 보이콧을 넘어, 식민지의 경제적 자립과 정치적 연대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미국 독립 혁명의 전개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