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놀이는 못이나 강, 호수, 바닷가 등에 배를 띄우고 즐기는 한국의 민속놀이이다. '선유(船遊)'라고도 한다.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레저와 오락, 풍류를 목적으로 하는 수상 문화 활동이다.
역사적으로 뱃놀이는 삼국시대부터 귀족들의 유흥과 시회(詩會)로 등장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 시대에 들어 양반과 선비들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하게 행해졌다. 선비들은 강에 배를 띄우고 연안의 경치를 감상하며 흥취에 따라 시를 짓거나 노래를 불렀고, 낚은 고기로 회를 치고 찌개를 끓여 술을 마시는 등 풍류를 즐겼다. 이러한 자리에는 기생들이 함께 타고 풍악을 울려 분위기를 돋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도 선유가 베풀어졌다. 1450년(세종 32) 정월, 명나라 사신 시강(侍講) 예겸(倪謙)과 급사중(給事中) 사마순(司馬詢)이 방문했을 때 선유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으며, 예겸은 기행문에서 배의 모습에 대해 "배는 세 척을 연결하였으며, 가운데 작은 지붕을 만들고 풀로 덮었다"고 묘사하였다.
일반 백성들은 특히 삼복(三伏) 중에 뱃놀이를 하였는데, 낚시로 망둥이 등의 고기를 낚아 매운탕을 끓이거나 어죽을 쑤어 먹으며 하루를 즐겼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의 낙동강가 부용대(芙蓉臺) 앞에서 열린 선유는 7월 기망(旣望, 음력 16일)에 베푸는 선비들의 시회로 유명하였다. 서울 지역의 주요 뱃놀이터로는 광진(廣津)·노량(鷺梁)·용산(龍山)·마포(麻浦)·양화진(楊花津)이 꼽혔다. 뱃놀이는 배를 한곳에 띄우고서도 즐겼으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벌이면 주위의 경치가 바뀌어 더욱 흥겨운 것으로 여겨졌다.
한편 '뱃놀이'는 뱃사공이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래를 뜻하기도 하나, 이는 규범 표기상 '뱃노래'에 해당하며 현재는 민속놀이로서의 의미로 더 널리 통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