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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제방·백가쟁명

개요

백화제방·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 bǎihuā qífàng, bǎijiā zhēngmíng)은 "온갖 꽃이 함께 피고, 수많은 학파가 다투어 논쟁한다"는 의미의 중국 정치 구호이자 문화·학술 방침이다. 쌍백운동(雙百運動)이라고도 약칭된다.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공식 제창되었으며, 예술과 학술 분야에서 자유로운 표현과 토론을 장려한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역사적 배경

1950년대 중반, 동유럽에서 반공주의 운동과 유혈 폭동이 잇따르자 중국 공산당은 사상적 경직성을 일부 완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1951년 4월, 마오쩌둥은 중국희곡연구원 설립을 기념하며 "백화제방, 추진출신(百花齊放, 推陳出新: 온갖 꽃이 함께 피고, 묵은 것을 밀어내고 새것을 낸다)"이라는 친필 기념사를 남겼다. 이는 신중국 문화예술의 방향성을 제시한 초기 표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1956년 4월 28일,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예술 문제에 있어 '백화제방', 학술 문제에 있어 '백가쟁명'이 과학 발전과 문학예술 번영을 위한 방침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해 5월 2일 제7차 최고국무회의에서 이 방침이 공식 선포되었다.

전개와 귀결

1957년 5월 1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사상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였고, 공산당에 대한 공개적 비판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의 비판 여론이 분출하였으나, 그 수위가 점차 높아지자 당 지도부는 태도를 급변시켰다.

불과 38일 후인 1957년 6월 8일, 중국 공산당은 반우파 투쟁(反右派鬪爭)을 개시하여 그간 자유롭게 발언했던 지식인들을 '우파'로 낙인찍고 대대적으로 탄압하였다. 이로써 약 55만 명이 우파로 몰려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의 전개

1978년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1기 3중전회) 이후, '쌍백' 방침은 다시금 중국 문예사업과 과학사업의 발전 방침으로 재확인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중국의 공식적인 문화·학술 정책의 기본 원칙 중 하나로 언급된다.

어원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이라는 표현 자체는 중국 고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사상적 번영을 가리키는 데서 유래한다.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릴 만큼 다양한 학파가 자유롭게 논쟁하며 꽃피웠던 시기로, 이 역사적 비유를 현대 정치 구호로 전용한 것이다.

같이 보기

  • 반우파 투쟁
  • 마오쩌둥
  • 중국 공산당
  • 춘추전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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