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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본기

《백제본기》(百濟本記)는 백제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로,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720년에 편찬된 일본의 정사 《일본서기》(日本書紀)의 백제 관련 기사에 주석(분주) 형태로 인용되어 그 내용이 일부 전해지고 있다. 《백제기》(百濟記), 《백제신찬》(百濟新撰)과 함께 '백제삼서'(百濟三書)로 통칭된다.

《일본서기》의 계체기(繼體紀)와 흠명기(欽明紀)에서 《백제본기》라는 서명이 직접 인용된 것은 18개소이며, 그 외에도 《백제본기》에서 인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흠명기에 다수 나타난다. 《백제본기》의 내용은 주로 무령왕(501~523 재위)에서 위덕왕(554~598 재위)까지의 약 3대에 걸친 시기(501~557년경)를 담고 있다. 이는 《백제기》보다 후대에 성립된 사서로 보이며, 월과 일의 간지(干支)까지 명기된 편년체 역사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서기》의 편찬자들은 백제삼서 중에서도 특히 《백제본기》를 중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게이타이키(계체기)의 대부분과 긴메이키(흠명기)의 절반에 달하는 분량이 《백제본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는 백제의 인명과 관직명, 당대의 역사적 사실 등이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특히 《삼국사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덕'(德) 자가 들어간 하위 관직명(장덕·고덕·시덕·계덕·대덕 등)을 가진 인물들의 기록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백제의 관등 체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백제본기》의 성립에 대해서는 학계에 여러 견해가 있다. 원사료가 된 동명의 백제 사서가 백제 본국에서 편찬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한편 《일본서기》 편찬 당시 일본 조정 내에서 벼슬하던 구다라노코니키시(百濟王) 집안(의자왕의 왕자 선광을 시조로 하는 백제 왕족 후손)이 제출한 가전적 기록이 《백제본기》의 바탕이 되었으며, 이들이 내용을 개변하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한 내용이 위덕왕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덕왕 즉위 시기를 전후해 원사료가 성립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백제본기》의 기년 표기는 《백제기》나 《백제신찬》보다 복잡한 양상을 보이며, 후반부로 갈수록 간지 표기가 세분화되고 구체화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왜왕을 '천황'으로 표기하고 '왜'나 '대왜' 대신 '일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원본 백제 사서의 표현이 아니라 《일본서기》 편찬 과정에서 개서된 것으로 여겨진다.

《백제본기》는 백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1인칭 시점에서 서술되었으며, 백제와 왜의 관계뿐 아니라 인접한 고구려의 내정 문제나 왜국의 내정에 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구려 안원왕 사후의 왕위 쟁탈전(세군과 추군의 내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나, 백제 성왕(명왕)의 전사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등이 《일본서기》에 인용되어 전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삼국사기》의 해당 기록과 비교하여 백제사 연구의 중요한 보완 자료로 평가된다.

한편, 동일한 한자 표기(百濟本紀)를 사용하는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는 1145년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의 구성 단위 중 하나로, 온조왕부터 의자왕까지 백제의 역대 왕들을 다루는 본기(本紀) 부분을 가리킨다. 이는 《일본서기》에 인용된 《백제본기》(百濟本記)와는 다른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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