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 철화운룡문 항아리(白磁 鐵畵雲龍文 立壺)는 조선 17세기에 제작된 철화백자 항아리로, 산화 철 안료를 사용하여 구름과 용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 특징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6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개요
이 항아리는 궁중 연향(宴享)에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용준(龍樽)의 일종으로, 본래 청화백자로 제작되던 용준이 철화백자로 대체 제작된 사례이다. 높이는 45.8cm, 아가리 지름 15.8cm, 밑지름 15.7cm이다. 1978년 12월 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형태와 특징
입 부분(구연부)은 짧고 안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세워졌으며, 몸체는 어깨 부분에서 팽배해졌다가 서서히 좁아지는 S자 곡선을 이루고 아랫부분에서 다시 벌어지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조선 전기로부터 이어지는 준(樽)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유약(釉藥)은 회백색의 백자유가 전면에 발라졌으며, 빙렬(氷裂, 얼음 금)이 없고 광택이 은은하다. 철화 안료의 발색은 붉은 철정색(鐵呈色)이 짙어 백색 바탕과의 색 대비가 강렬하다.
문양
항아리의 문양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입 부분(구연부): 당초문대(唐草文帶)가 둘러져 있다.
- 어깨 부분: 연판문대(蓮瓣文帶, 연꽃잎 무늬 띠)가 장식되었다.
- 몸체 전면: 구름 속에서 여의주를 집어삼키려는 듯한 모습의 용이 표현되었다. 용의 부릅뜬 눈, 입, 뿔, 수염, 갈기, 비늘 등이 휘날리는 구름과 함께 약동하듯 생동감 있게 묘사되었다.
- 밑부분: 이중의 삼각선문대(三角線文帶)가 짙은 철화 안료로 표현되었으며, 이는 번개무늬의 변형으로 보인다.
굽은 안바닥을 오목하게 파내었으며(죽절굽 형태), 굽다리에는 가는 모래받침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노출된 태토(胎土)는 회황색을 띠고 있다.
제작 배경과 시기
철화백자 용준은 17세기 전반에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병자호란 등 거듭된 전란으로 인해 물력(物力)이 부족하고 청화 안료(코발트)의 수입이 원활하지 않아 청화백자 용준의 제작이 어려웠다. 이에 따라 여러 대책이 모색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완성된 백자 위에 임시로 그림을 그려 청화백자처럼 꾸민 '가화(假畵)' 용준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가화의 폐단이 커짐에 따라 석간주(산화 철)로 무늬를 그린 철화백자 용준이 제작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85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이 항아리는 17세기 중엽 관요(官窯) 중 하나인 경기도 광주 선동리 가마터에서 제작된 것이 밝혀졌다. 회백색 유약, 특이한 기형, 운룡문·당초문·삼각선문 등의 철사 문양, 오목한 굽의 표현 등은 경기도 광주군 일대의 17세기 관요지인 상림리·선동리·정지리 등의 가마터 백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기형의 계보
이 항아리의 기형은 1489년(성종 20)에 제작된 '백자 청화 '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에서 비롯되었으며, 16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되는 '백자 청화 송죽인물문 항아리'(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로 이어져 17세기 전반경의 변화된 모습이 이 항아리에서 나타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평가
S자 곡선을 이루는 장신(長身)의 몸체에 짙은 철사 안료로 박진감 있게 표현된 운룡문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17세기 전반경의 대표적인 철화백자 항아리 중 하나로 평가된다. 빠른 필치와 대담한 생략 및 변형이 돋보이며, 철화백자 중에서도 높이 평가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