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원교(白元敎, 1900년~ ?)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경찰 출신의 인물로,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 헌병대 장교로 활동한 인물이다. 위키백과 및 관련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00년 12월 23일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24년부터 1927년까지 황해도 웅진경찰서에서 경부보(경찰 하위직)로 근무하였고, 1928년과 1929년에는 황해도 경찰부 경무과 경부 겸 고등경찰과 경부로서 순사교습소 경부를 겸직하였다. 재직 중이던 1928년 11월 쇼와 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수여받았다. 1930년 황해도 사리원경찰서로 옮겨 경부(보안계 주임)를 지냈으며, 같은 해 3월 약 10일간 일본 도쿄·교토·오사카 등지로 사무시찰을 다녀왔다. 1939년 6월에는 훈8등 서보장을 받았다. 중일전쟁 관련 군사수송 경계, 군용물자 조달 등 전시 업무를 수행한 공로로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랐다. 1940년 11월 황해도 경시(警視)로 승진하면서 퇴직하였다. 퇴직 후인 1943년 6월 주식회사 견영사 취체역을 맡았고, 같은 해 7월 황해도 봉산군 학교비 평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1월에는 항공기 헌금으로 200원을 헌납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헌병대 장교를 지냈으며, 1949년 5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 또한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대전형무소 재소자 및 민간인 집단희생사건(대전 골령골 학살)과 관련하여, 당시 육군형무소 소속 헌병대 제2대 형무소장(1949. 7. 3~1950. 10. 30)으로서 학살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바 있다. 한국제노사이드연구회 등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백원교 소령이 재소자의 신분장을 보고 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증언되었다.
《친일인명사전》(2009,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에 수록된 인물로, 일제강점기 고등경찰 및 경시(警視) 계급까지 승진한 친일 관료 계열 인물로 분류된다. 사망 연도는 기록이 확인되지 않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