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백등산 포위전

백등산 포위전(白登山包圍戰) 또는 백등지위(白登之圍)는 기원전 200년, 중국 전한(前漢)과 흉노(匈奴) 사이에 발생한 군사 충돌이다. 백등산 전투(白登山戰鬪)라고도 불리며, 영어로는 Battle of Baideng으로 표기된다.

배경

기원전 202년, 항우를 멸망시키고 중국을 재통일한 한고조 유방(劉邦)은 흉노에 대비하기 위해 한왕 신(韓王信)을 대(代) 땅으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한왕 신은 흉노와의 평화를 주장하였고, 이를 배신으로 간주한 유방이 압박하자 한왕 신은 흉노에 투항하였다. 여기에 한왕 신의 군대가 더해진 흉노 4만 대군이 태원(太原) 방면으로 침공해 들어왔다.

경과

고조 유방은 32만 군대를 거느리고 평성(平城, 현재의 산서성 대동 지역)에서 흉노를 요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흉노의 묵돌 선우(冒頓單于)는 약병으로 위장한 퇴각 작전을 펼쳐 한군을 유인하였고, 고조의 본대는 이에 속아 진격하다가 백등산(白登山)에서 고립되어 포위당하였다. 흉노군은 방위별로 다른 색의 말을 배치하여 한군을 포위하였는데, 북방 군단은 흑마, 남방 군단은 적마, 서방 군단은 백마, 동방 군단은 흰 얼굴의 흑마에 탄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

고조 유방은 7일간 포위된 끝에 모사 진평(陳平)의 계책에 따라 묵돌 선우의 왕비(연지, 閼氏)에게 뇌물을 주어 포위망의 일각을 벌리게 하였고, 그 틈을 타 장안(長安)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이때 한군 병사들은 혹독한 추위로 인해 열 명 중 세 명꼴로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고 기록된다.

이후 한고조 유방은 흉노에 공물을 바치는 조건으로 형제 관계의 화친(和親) 정책을 맺었으며, 이 관계는 한무제(漢武帝) 때까지 이어졌다.

의의

백등산 포위전은 한나라 초기 대외 정책의 방향을 결정지은 중대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한나라는 흉노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화친 정책을 채택하게 되었으며, 이후 흉노는 중국 북방의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무제 시기에 이르러서야 한나라는 흉노에 대한 대대적인 원정을 감행하게 된다.

기록상의 특징

《사기(史記)》의 〈고조본기〉, 〈공신열전〉, 〈흉노열전〉 등에서 이 전투에 대한 기록이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사료 간 차이가 존재한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