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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운

백남운(白南雲, 1894년 2월 11일~1979년 6월 12일)은 일제강점기의 경제학자·교육자이자, 해방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학자·정치인이다. 본관은 수원 백씨이며, 호는 동암(東巖)이다.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에 입각한 한국 사회경제사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생애 전반기

전라북도 고창(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1912년 수원농림학교에 입학하여 1915년 졸업하였으며, 이후 강화보통학교 교원과 강화군 삼림조합 기술자로 근무하였다. 1918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고등상업학교와 도쿄상과대학(현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하였다. 일본 유학 시절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활동

1925년 도쿄상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뒤 연희전문학교 상과 교수로 부임하여 경제학을 강의하였다. 그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과 계급투쟁론의 입장에서 조선사의 사회경제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일제의 식민사관, 특히 '정체성론'을 비판하였다.

1933년에는 한국의 원시·고대 사회경제를 다룬 최초의 사회경제사 연구인 『조선사회경제사』를 간행하였고, 1937년에는 후속 저작인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상』을 발간하였다. 이들 저작에서 그는 한국의 역사가 원시씨족공산체, 삼국시대의 노예경제, 아시아적 봉건사회를 거쳐 근대 상품생산제사회로 발전하였다고 서술하였다.

1922년부터 이승훈, 한용운, 조만식, 허헌 등과 민립대학설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9년에는 조선사정연구회 조직에도 참여하였다. 1938년에는 이순탁 등 동료 교수 및 학생들과 함께 '조선사정연구회사건'으로 일제에 피검되어 약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석방 이후에는 학자들과의 교류 외에 대체로 은둔 생활을 보냈으며, 한편 1941년부터 야마토주쿠(大和塾)에 참석하여 전시 통제경제를 지지하는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는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에 기반한 한국 최초의 체계적인 사회경제사 저작으로, 이후 한국 경제사학 및 사회경제사 연구 발전에 개척자적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 정치 활동

1945년 8·15 광복 직후 백남운은 조선학술원을 설립하여 원장에 취임하였고, 민족문화연구소도 설립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경성대학 법문학부 재정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초기에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반탁 입장을 보였으나 이후 찬탁으로 선회하였다.

1946년에는 김두봉 등이 북한에서 결성한 조선신민당의 경성특별위원회(후에 남조선신민당으로 발족) 위원장을 맡았고, 민주주의민족전선 의장 및 상임위원 등으로 정치활동을 하였다. 이후 여운형 등과 사회노동당과 근로인민당을 결성하는 과정에 참여하였고, 1947년 5월에는 근로인민당 부위원장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여운형이 암살되고 좌익 세력에 대한 검거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으로 향했으며, 이는 그에게 열두 번째이자 마지막 북행이었다. 이후 남북협상이 끝난 뒤 평양에 잔류하여 월북하였다. 월북 과정이나 이후 남한 출신 지식인들의 월북을 중개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활동

월북 이후 백남운은 1948년 8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같은 해 9월 초대 내각의 교육상을 역임하였다. 이후 1952년 과학원 원장, 1955년과 1958년에는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1961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으며, 1967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피선되었다. 말년에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으로 활동하다가 1979년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북한 정권 내에서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방송대학 총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연안파 인사들이 숙청당하는 과정에서도 비교적 평탄한 정치적 생애를 유지한 예외적인 인물로 언급된다.

평가 및 저서

백남운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상황에서 한국의 원시·고대·중세 사회경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한국 경제사학 발전에 선구자적 구실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그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는 그 방법론의 성격을 놓고 당시 정통파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사민주의적이고 민족개량주의적 성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대표 저서로는 『조선사회경제사』(1933),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상』(1937), 『조선민족의 진로』(1946) 등이 있다. 출생 연도에 대해서는 1894년설과 1895년설이 함께 언급되며,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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