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관(白樂寬, 1846년~1883년)은 조선 말기의 유학자이자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가이다. 자는 경교(景敎), 호는 추강(秋江)이며, 본관은 남포(藍浦)이다.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병조참판을 지낸 백홍수(白弘洙)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
백낙관은 1880년(고종 17) 개화를 반대하는 척사상소(斥邪上疏)를 올렸다가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881년에는 청주에서 한홍렬(韓洪烈)과 함께 충청도 유림의 명의로 척사상소를 올리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882년 5월 4일에는 단독으로 서울 남산에 올라가 봉화(烽火)를 올리고 척사상소를 제출하여 다시 체포·투옥되었다. 같은 해 7월 임오군란(壬午軍亂)이 발생하자, 난을 일으킨 군졸들이 백낙관의 석방을 요구하며 의금부에 들어가 그를 구출하였고, 군졸들로부터 '백충신(白忠臣)'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청나라 군사의 개입으로 임오군란이 진압되자, 정언(正言)을 지낸 김재봉(金在鳳)의 상소로 백낙관은 다시 체포되어 제주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이후 조정에서 그를 주살해야 한다는 공론이 일어 1883년 제주 유배에서 풀려나 서울로 이송되어 의금부에 수감되었고, 같은 해 처형되었다.
상소의 내용
백낙관의 상소는 주로 일본의 침략 위협과 개화 정책에 대한 반대를 골자로 하였다. 그는 역사적 사례를 들어 왜국의 위협을 경고하고, 척사척외(斥邪斥外)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의 상소 내용은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기록되어 있다.
사후 평가
백낙관은 보령 지역의 '5열사' 중 으뜸으로 일컬어진다. 이현규(李玄圭)의 『현산문집(玄山文集)』에 그의 행장이 기록되어 있으며, 서울 600년사 연표에도 그의 활동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에 그의 인물 정보가 등재되어 있다.
참고 자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기려수필(騎驢隨筆)』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