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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관

백관(百官)은 한국 역사에서 국왕을 보필하고 국정에 참여하는 모든 문신(文臣)과 무신(武臣)을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다. 한자로는 百官으로 표기하며, 문무백관(文武百官)이라고도 부른다.

정의

백관은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시대에 궁궐이나 궁궐 주변의 각 관청(각사)에서 국왕을 보좌하고 국정 운영에 참여한 모든 관료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는 특정한 개별 관직명이 아니라, 여러 품계의 관원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역사적 배경

백관의 개념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였으나, 관복 제도와 관직 체계가 정비된 것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사』 여복지(輿服志)에 백관의 관복 제도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조복(朝服)·제복(祭服)·공복(公服)의 구분이 이 시기에 나타났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태조 원년(1392)에 공복 제도가 정해졌고, 세종 8년(1426)에 이르러 백관의 조복·제복·공복·상복(常服) 제도가 완성되었다.

백관의 복식

백관은 의례의 성격에 따라 여러 종류의 관복을 착용하였다. 주요 관복으로는 다음이 있다.

  • 조복(朝服): 나라의 대사(大祀), 경축일, 원단(元旦), 동지, 조칙 반포, 진표(進表)할 때 착용하였다.
  • 제복(祭服): 왕이 종묘나 사직에 제사할 때 백관이 착용하였다.
  • 공복(公服): 공사(公事)와 사은(謝恩) 관계로 왕을 배알할 때 착용하였다.
  • 상복(常服): 평상시 집무時に 착용하는 관복으로, 사모(紗帽)·단령(團領)·품대(品帶)·화(靴)로 구성되었다.
  • 시복(時服): 항시 공무를 볼 때 착용한 복장이다.
  • 융복(戎服): 왕의 행차 수행, 외국 사신 파견, 또는 국난을 당했을 때 착용하였다.

이들 관복에는 상하의 위계질서를 나타내기 위해 포의 색, 흉배(胸背), 품대(品帶)의 재질 등에 차등을 두었다.

관련 제도

조선 초기에는 백관의 관복을 연구하고 제정하기 위하여 관복색(官服色)이라는 임시 관서가 설치된 바 있다. 1416년(태종 16) 1월에 설치되었다가 같은 해 5월에 폐지되었으며, 예조판서 조용(趙庸)과 예문관제학 허조(許稠)가 제조(提調)로서 주재하였다. 관복색은 주로 백관의 조복과 제복을 상정(詳定)하였으며, 명나라 홍무예제(洪武禮制)를 기본으로 삼았다.

기타 용례

백관(白管)은 건축·배관 분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아연 도금 처리된 강관(鋼管)을 가리킨다. 표면에 아연 도금을 하여 녹 방지 효과가 뛰어나며, 주로 소방 배관, 가스관, 냉각수 배관 등에 사용된다. 이는 표면 처리가 없는 흑관(黑管)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다만 음용수 배관으로는 아연 성분 용출 우려로 인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백관당(百官幢)은 신라시대의 군부대로, 중앙의 여러 관아를 수위(守衛)하는 임무를 띠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설치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며, 소속 군관으로 법당주(法幢主)와 법당감(法幢監)이 각각 30인씩 배치되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
  • 『고려사』
  • 『경국대전』
  • 『조선왕조실록』
  • 신명호, 『조선의 왕』, 가람기획, 1998.
  • 유희경, 『한국복식사연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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