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준(方漢駿, 1906년 3월 6일 ~ 1950년 8월 27일)은 일제강점기 한국의 영화 감독이다. 본관은 온양이며, 나운규, 이규환, 최인규와 함께 한국 영화 초창기의 사실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힌다. 일부 자료에서는 출생 연도가 1905년으로 기록되기도 하나, 이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생애
한성부(서울) 출신으로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로 건너가 쇼치쿠키네마(松竹キネマ) 가마다(蒲田) 촬영소에서 약 5년간 근무하며 영화를 공부했다. 백운행(白雲行) 또는 자운행(自雲行)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35년 귀국하여 《살수차》를 연출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살수차》는 시내에 물을 뿌리는 청소 자동차를 소재로 하였으며, 흑사병이 창궐하는 경성부 거리의 암울한 현실을 사회 비판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검열을 받았다.
이후 정비석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문예영화 《성황당》(1939)과, 한강 나루터 뱃사공 부자 간의 세대 갈등을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인 세미다큐멘터리적 수법으로 그린 《한강》(1938)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한강》은 카메라의 기교보다 심리적 효과에 중점을 둔 점에서 1930년대 후반 한국 영화의 흐름 변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친일 활동과 후기 생애
1940년 조선영화령이 공포되면서 영화에 대한 규제가 크게 강화되었고, 방한준은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연출과에 소속되어 태평양 전쟁 종전까지 국책 영화를 연출하였다. 《승리의 뜰》(1940), 《풍년가》(1942), 《병정님》(1944), 《거경전》(1944) 등이 해당되며, 모두 일제의 전쟁 지원을 위한 영화였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결성한 조선영화인협회에도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방한준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연극/영화 부문)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에는 조선영화동맹 중앙상임위원을 거쳐 영화감독구락부에 가담한 바 있으나 실제 영화 연출작은 없었다. 미군정 시기에는 공보부 영화과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사망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중 실종되었으며,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강도 만포시의 수용소에서 전쟁 중 병사했다는 증언이 있다. 사망일은 1950년 8월 27일로 기록되어 있다.
주요 작품
- 《살수차》(1935)
- 《한강》(1938)
- 《성황당》(1939)
- 《승리의 뜰》(1940)
- 《풍년가》(1942)
- 《병정님》(1944)
- 《거경전》(1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