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영(方一榮, 1923년 11월 26일 ~ 2003년 8월 8일)은 대한민국의 언론인·경제인·기업인으로, 일간지 《조선일보》의 제2대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아호는 우초(愚礎)이며,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생애 초기
방일영은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방재윤은 방응곤의 아들이었으나, 아들이 없던 삼촌 방응모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방일영은 그 방응모의 손자로 출생하였다. 이후 할아버지 방응모를 따라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로 이주하였다. 1937년 서울로 상경하여 경성제일고보(경기중학교 전신)에 입학했으나 졸업장 없이 4년을 수료한 뒤, 1941년 일본 중앙대학 예과로 유학하였다.
조선일보 입사와 경영권 장악
1943년 4월 6일, 방일영은 조부 방응모의 비서로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였다.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 말기로 조선일보가 폐간된 상태였으며, 이후 1945년 11월 조선일보의 복간에 참여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중 사장 방응모가 납북되자, 1954년 31세의 나이로 조선일보의 대표 취체역(이사)에 취임하여 경영권을 장악하였다. 1964년 11월 회장에 취임하면서 동생 방우영을 대표이사 겸 사장으로 임명하여 일선 경영을 맡겼다.
경영 활동과 사회 기여
방일영은 조선일보 재직 기간 동안 신문을 급팽창시켜 1980년대 발행 부수 1위의 신문으로 성장시켰다. 1974년 방일영장학회를 조직하여 고학생들의 장학금을 지원하였고, 1993년 3월 당뇨 등의 지병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994년에는 방일영국악상을 제정하여 우수 국악인을 발굴·포상하였으며, 1995년 5월 방일영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문화예술인 지원 사업을 추진하였다. 1999년 일신방직 사외이사로 선임되었고, 같은 해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말년과 사후
방일영은 1999년 3월 18일 조선일보 고문직을 사임함으로써 언론계에서 은퇴하였으며, 2003년 8월 8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사후 2004년 6월 충남 아산시의 온양방씨 중시조 신단묘원에 송덕비가 세워졌다.
평가와 비판
방일영에 대해서는 언론문화 창달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한편, 제3·4공화국 시기 권언유착(권력과 언론의 결탁)에 가담한 장본인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밤의 대통령' 또는 '밤의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사후에는 혼외자 관련 상속 소송 등 가족사적 논란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가계
장남 방상훈은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고, 둘째 아들 방용훈은 전 코리아나호텔 대표이사였다. 동생 방우영은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