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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데미에르 13일 쿠데타

방데미에르 13일 쿠데타(프랑스어: Coup du 13 vendémiaire an IV)는 프랑스 혁명력 제4년 방데미에르 13일(그레고리력 1795년 10월 5일), 파리에서 왕당파와 반혁명 세력이 국민공회(국민의회)에 맞서 일으킨 무장 봉기를 국민공회 군대가 진압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포병 지휘관으로서 '포도탄 사격'으로 봉기를 진압하여 명성을 얻고, 이후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계기로 평가된다.

배경

1795년 8월 열두 달 헌법(제3년 헌법)이 공포되고 국민공회의 임기가 만료되자, 새로운 입법부 구성을 위한 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왕당파(입헌 왕정파)와 자코뱅파(공화파) 양측 모두 선거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특히 왕당파는 선거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국민공회가 '삼분의 이 조항'을 통해 구 의원 3분의 2를 신 의회에 잔류시키려 하자 이에 반발하여 파리 시민들을 선동, 10월 5일(방데미에르 13일) 툴르리 궁전 주변에서 무장 시위를 벌였다.

전개

국민공회는 폴 드 바라스 등에게 진압 임무를 부여했으나, 바라스는 젊은 포병 장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실질적인 작전 지휘를 맡겼다. 나폴레옹은 생로슈 교회(Saint-Roch) 앞 등 전략적 지점에 포병대를 배치하고, 접근하는 왕당파 군중을 향해 포도탄( grapeshot)을 발사하여 강력한 화력으로 진압했다. 이 진압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왕당파의 저항은 무너졌다.

결과 및 의의

  • 왕당파 세력 약화: 이 사건으로 파리 내 왕당파의 무력 기반이 크게 약화되었고, 제3년 공화정(총재 정부)의 수립이 확정되었다.
  • 나폴레옹의 부상: 나폴레옹은 이 공로로 내무군 사령관, 이어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에 임명되며 정치적·군사적 입지를 다졌다.
  • 군부의 정치 개입 선례: 민간 정부(국민공회)가 군부(나폴레옹)에 의존하여 위기를 타개한 사례로, 훗날 브뤼메르 18일 쿠데타(1799년)로 이어지는 군부의 정치 개입 관행을 보여준 초기 사례로 분석된다.

용어에 대한 견해

한국 사학계 및 세계사 교과서에서는 이 사건을 흔히 '방데미에르 13일 사건(사건/봉기 진압)' 또는 '방데미에르 13일의 포도탄' 등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으며, '쿠데타'라는 용어는 나폴레옹이 주도한 브뤼메르 18일 쿠데타(1799년)에 주로 사용된다. 다만, 왕당파가 합법적 정부(국민공회)를 무력으로 전복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반혁명 쿠데타 시도'로, 또는 나폴레옹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위상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군부의 정치 개입'이라는 맥락에서 '쿠데타'적 성격을 부여하여 '방데미에르 13일 쿠데타'라 칭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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