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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진

발로진(벨라루스어: Валожын/Vałožyn, 러시아어: Воло́жин)은 벨라루스 민스크주에 위치한 도시로, 발로진 구역의 행정 중심지이다. 수도 민스크에서 북서쪽으로 약 75km 떨어져 있으며, 네만강 유역의 발로진카강 연안에 위치한다. 나리보키 숲의 시작 지점에 해당한다.

개요

발로진은 14세기에 티슈키에비치 백작이 설립한 사유지 도시로 시작되었으며, 20세기 초까지 사유 도시로 유지되었다. 빌뉴스와 민스크를 잇는 주요 도로 변에 건설되었으며, 주변의 비옥한 토지에서 주로 아마 재배와 가축 사육이 이루어졌다. 시가지의 절반을 둘러싸고 있는 건축물 유적 중에는 종탑, 궁전, 수도원 등 12세기 건축물이 포함되어 있으며, 나머지 주요 건축물 대부분은 19세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

발로진은 리투아니아 대공국 시기에는 빌뉴스 주에 속해 있었고, 1793년 폴란드 제2차 분할의 결과로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 1839년에는 유제프 티슈키에비치가 발로진카강을 따라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고 공공 동물원을 설립했다. 1815년, 1880년, 1886년에 발생한 세 차례의 대화재로 도시가 소실되었으나 재건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러시아군에 점령되었고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1919년 폴란드군이 이 지역을 장악했다. 1939년 9월 소련의 폴란드 침공 첫날 적군에 점령되었으며, 같은 해 11월 벨로루시 SSR에 편입되었다.

유대인 역사와 홀로코스트

발로진은 19세기 유대교 교육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07년 하임 발로진 랍비가 설립한 "에츠 하임" 예시바(Volozhin Yeshiva)는 탈무드 연구의 선구적인 기관이었으며, 이후 벨라루스, 러시아, 리투아니아 전역의 유사한 교육 기관들의 모델이 되었다. 이 예시바는 1892년 당국에 의해 폐쇄되었으나 그 영향력은 오래 지속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도시 인구의 약 절반이 유대인이었으나, 나치 독일 점령 기간 중 대부분이 학살되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 직후 발로진은 점령되어 소각되었고, 유대인 주민 약 3,500명이 게토에 수용되었다. 1941년 10월과 1942년 5월에 걸쳐 게토 주민들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발생하여 대부분이 살해되었다. 1944년 7월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인구

1995년 조사에서 인구는 약 11,500명이었다.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여, 2026년 기준 인구는 약 9,840명으로 집계되었다. 1897년 인구 4,500명에서 1989년 10,643명까지 증가한 이후 최근 수십 년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인물

발로진 출신 또는 연고의 주요 인물로는 볼로진 예시바의 설립자인 하임 볼로진 랍비, 예시바 교장을 지낸 나프탈리 츠비 예후다 베를린 랍비, 하임 솔로베이치크 랍비, 이스라엘 미즈라히 운동의 지도자 메이르 바르일란 등이 있다. 히브리 시인 하임 나흐만 비알릭도 이곳 예시바에서 수학했다. 할리우드 배우 로렌 버콜의 조부모가 발로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2010년 벨라루스에서는 볼로진 예시바를 기념하는 은화(10루블)가 발행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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