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우파 운동(反右派運動, 중국어 간체자: 反右运动, 정체자: 反右運動, 병음: Fǎn Yòu Yùndòng) 또는 반우파 투쟁(反右派鬪爭)은 1957년부터 1959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전개된 정치 운동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 마오쩌둥주의로 사상을 개조한 공산주의 지식인들이 새 정권의 각계 구성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마오쩌둥이 건국 초기에 정풍운동을 통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공산당의 주요 노선으로 정했을 때, 이에 소극적이었던 인사들이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마오쩌둥 지도부는 자신의 노선에 방해가 되는 인사들이나 성향이 의심되는 인사들을 다시 탄압하기 위해 중국 내 '우파'를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반우파 운동을 전개하였다.
반우파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는 1956년 중국공산당이 제시한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 방침이었다. 이 방침은 지식인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출을 장려하는 것이었으나, 이후 당과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비판이 드러나자 공산당은 이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1957년 6월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소수의 우파들이 당을 전복시키려 책동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발표하며 반우파 운동의 신호탄을 올렸다.
정치 운동의 슬로건과 달리, 우파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도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우파가 아닌 데도 탄압을 받은 자들 가운데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청년 공산주의자나 트로츠키주의파에 속하는 이들도 포함되었다. 마오쩌둥 지도부는 마오쩌둥이나 중국공산당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조금 다른 의견이 있다고 생각되는 인사들을 광범위하게 탄압하고자 하였다. 우파로 지목된 이들은 정치 심문, 사상 검사, 고문, 모욕 등을 당하였으며, 약 55만 명 정도가 피지목자로서 박해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지식인 40만 명에서 70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농촌이나 공장 노동 개조로 보내졌다는 통계도 제시된다.
반우파 운동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연변 지역을 비롯한 중국 내 한인 사회에서도 진행되었다. 1957년 6월 22일 《인민일보》의 사설인 '모든 인민의 투쟁을 통해 우파를 분쇄하자'가 《연변일보》에 보도되면서 한인 지역의 반우파 운동도 시작되었다. 연변 지역의 반우파 투쟁은 지식 분자 범위에서 진행되었으나, 연변 민족 정풍과 더불어 투쟁 범위가 확대되면서 연변 지역의 당과 정부에 불행한 결과와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반우파 운동은 이후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78년 이후에는 우파로 간주되어 탄압받았던 이들을 복권시키는 과정이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제시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1957~58년 반우파 투쟁 시기 중국 전체에서 약 55만 명의 '극우분자'가 적발되었다고 한다. 반우파 운동 피해자들은 오랜 침묵을 깨고 명예회복을 요구해 왔으며, 이는 중국 현대사 연구와 사회적 기억의 중요한 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