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반미청년회는 1986년 김영환의 “강철서신”에 영향을 받아 주체사상을 도입한 학생운동 조직으로, 1990년까지 NL(노동·민주) 계열 대학생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직은 의장·무력부·연락부·선전부·후원부 등 5개 부서로 구성됐으며, 김일성 주체사상과 한국민족민주전선을 교본으로 삼아 활동했다.
사건 전개
- 1987년 10월 – 홍익대학교에서 반미청년회 추진위가 결성되었다.
- 1987년 12월 – 전국 26개 대학에 걸쳐 핵심 멤버 72명을 포섭, 1988년 1월 정식 결성.
- 1988년 2월 – 선전부는 KAL 858기 폭파 사건이 조작이라는 주장과 주체사상 선전물을 5개 대학(성균관대·경북대·명지대·연세대·서강대 등)에 배포했다.
- 1988년 2월 12일~16일 – 무력부 산하 ‘구국결사대’가 연세대·서울·광주 미 문화원을 기습 점거·폭파하려는 계획을 발표하고, 실제로 소이탄·사제폭탄을 가지고 미 문화원에 침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 1988년 3월 – 국가안전기획부는 반미청년회를 ‘반국가적 조직’으로 규정하고, 주요 인물 12명을 검거, 다수는 수배·구속하였다.
주요 인물
- 안희정 – 조직부장. 구속 후 징역 1년 6개월을 집행유예 2년 선고받음.
- 조혁·장원섭 등 – 선전·무력 부서 핵심 멤버로 검거됨.
이후 전개 및 평가
- 1990년 2월 – 조직이 공식 해산되었다.
- 검거 작전은 당시 정부가 ‘친북괴’·‘반국가’ 단체를 억제하려는 안보 정책의 일환으로 평가되며, 대학생 운동의 급격한 급진화와 국가 안보 기구의 강경 대응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는다.
- 반미청년회의 활동은 민주화 운동과는 구분되는 ‘종북·반미’ 성향을 띤 비밀결사적 성격이 강조돼, 후속 연구에서는 학생운동 내 이념적 분열과 국가 보안법 적용 범위에 대한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반미청년회 사건” (2024년 기준)
- 나무위키 “반미청년회 사건” (2025년 11월 개정)
※ 위 내용은 공개된 온라인 자료를 종합한 것으로, 일부 세부 사항은 추가 연구가 필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