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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무

박형무(朴亨武, 1922년 5월 5일 ~ 1982년 10월 2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號)는 산우(山芋)이다.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대전에서 출생하였으며, 대전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생애 및 독립운동

1941년 일본군에 학병으로 강제 동원되어 미얀마에 파견되었다. 1945년 3월, 버마(현 미얀마)의 쿠메(Kume) 지방에서 일본군 기마대를 탈출하여 영국군에 투항하였다. 이후 연합군에 인계되어, 먼저 탈출한 박순동(朴順東)·이종실(李鍾實) 등과 함께 인도 뉴델리를 거쳐 이집트 카이로를 경유, 미국 워싱턴 D.C.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1945년 6월부터 9월까지 미국 정부가 추진한 냅코 프로젝트(Napko Project)에 참여하였다. 냅코 프로젝트는 재미한인과 일본군 출신 한인 포로들을 선발하여 한반도 침투를 목표로 한 미군의 첩보·특수 훈련 프로그램이었다. 훈련은 캘리포니아주 산타카탈리나 섬에서 이루어졌으며, 박형무는 교관 이태모(李泰模)로부터 무전 기술(분당 20단어 수신, 25단어 송신), 잠입 훈련, 폭파, 낙하산 훈련 등을 이수하였다. 훈련 기간 중 그는 '찰리(Charley)'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다.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국내 침투 훈련이 중단되었고, 박형무는 하와이의 포로수용소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박순동·이종실과 함께 《자유한인보》라는 한글 주간지를 창간·편집하여 제7호까지 발간하였다.

1946년 6월 대한민국에 귀국한 후 국방경비대를 거쳐 대한민국 육군에 편입, 1949년 육군 하사로 전역하였다. 이후 한국독립당과 자유당에서 행정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말년에는 천주교에 입교하여 세례명 안드레아를 받았다.

서훈

사후인 2008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동명이인

역사적으로 동명이인이 존재한다. 조선 전기의 무신 박형무(朴衡武, 1440~1512)는 본관이 충주(忠州)이며, 자는 우보(羽甫)로, 세종~중종 시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또한 현대 인물로는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산부인과 교수 박형무가 있으며, '스마일 의사'로 불리며 식물성 에스트로겐 관련 저술 활동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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