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묵(朴海默)은 한국의 인명으로, 역사적으로 확인된 두 명의 인물이 존재한다.
1. 일제강점기 관료 박해묵(朴海默, 1875~1934)
박해묵은 일제강점기의 관료로, 호는 소석(小石)이며 본적은 경성부 삼청정(현재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일대)이다. 1903년 함흥전보사 주사로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1904년 부산전보사 주사, 1907년 대동학회 재정경리위원을 역임했다.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일진회(一進會)에서 활동하며 평의원과 총대를 지냈다. 일진회 재직 시절 합방 청원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의병 활동을 방해하는 활동에도 관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는 시천교(侍天敎)에서 종무원, 서화과 주임, 경리과 주임 등을 역임했다. 1924년에는 내선융화를 목표로 한 친일단체인 각파유지연맹의 발기인과 임시간사를 지냈으며, 1925년 시국대동단 발기인 및 집행위원, 1931년 단군신전봉찬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일진회 평의원 재직 시절 한일 합방에 기여한 공로로, 1934년 일본 우익 단체 흑룡회가 건립한 일한합방기념탑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사후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2. 현대의 사진기자 박해묵
박해묵은 헤럴드경제( Herald Economy) 소속의 사진기자로, 201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사진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이달의 보도사진상'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포트레이트(인물사진), 제네럴뉴스, 생활스토리 등 다양한 부문에서 우수상 및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