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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암

박철암(朴鐵岩, 1918년 1월 8일 ~ 2016년 7월 7일)은 대한민국의 등반가, 탐험가, 교육자이다. 호는 중산(中山)이다.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원정을 이끌었으며, 미답의 티베트 무인구를 세계 최초로 횡단한 탐험가로 평가된다.

생애

1918년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나 평안남도 동백산(東白山, 2,096m) 자락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열여섯 살 무렵 마을 어른들로부터 동백산 정상부에 부서진 뱃조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산에 오른 것이 등산의 계기가 되었다. 1943년 11월 독립운동에 뜻을 품고 만주 일대에서 독립단을 찾아다니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9년 경희대학교 산악부를 창설하였고, 1961년 경희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후 경희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냈다. 2016년 7월 7일 향년 98세로 별세하였다. 가족으로는 배우자 강재연(시인)과 1남 4녀가 있다.

주요 업적

히말라야 원정

1962년 한국 최초로 경희대학교 산악부를 이끌고 당시 미답봉이었던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제2봉(7,751m) 원정에 도전하여 무명봉(6,700m)을 등정하였다. 이는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의 첫 장을 연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듬해인 1963년에는 한국 최초의 탐사 보고서인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의 탐사기》를 발간하였다.

1971년에는 로체샤르(Lhotse Shar, 8,383m) 원정대장을 맡아 한국인 최초로 8,000m 고도를 돌파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정상 등정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이 경험은 이후 한국 고산등반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또한 이때 네팔 정부에 에베레스트 입산 신청서를 접수하여 1977년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의 초석을 놓았다.

티베트 탐험

1990년 한중 수교 이후 티베트 탐사에 본격적으로 나서 총 29차례에 걸쳐 티베트를 탐험하였으며, 500여 종의 고산식물을 연구·보고하였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지구의 제3극이라 불리는 티베트 무인구(無人區) 탐험에 집중하여, 2007년 12월 89세의 나이로 세계 최초 무인구 횡단 4,600km에 성공하였다. 이 공로로 장북고원과고단 조직위원회로부터 "지구의 제3극인 무인구를 넘어 탐험에 성공한 첫 번째 과학탐험가"라는 명예증서를 수여받았다.

저서

  •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의 탐사기》(1963)
  • 《세계의 지붕 TIBET 꽃과 풍물》
  • 《박철암의 산과 탐험》(2019, 도서출판 선인)

기념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 자락에는 2004년 완공된 박철암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박철암이 2004년부터 2016년 별세할 때까지 기거하던 공간으로, 현재 그의 탐험 정신을 기리고 산악문화 증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의 기록물들은 경희대학교 기록관과 국립산악박물관에도 보관되어 있다.

논란

박철암이 1962년 다울라기리 원정 당시 등정했다고 보고한 6,700m 무명봉에 관하여, 국내 산악계 일각에서는 허위 등정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는 한국 산악계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고산등반 등정 시비 논쟁의 일부로서, 해당 등정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산악계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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