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차석(朴且石, 1909 ~ ?)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린 시절 만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종락 등과 함께 김일성과 같이 만주 화전현에 세워진 군사교육 기관인 화성의숙을 다녔다고 기록되어 있다.
1920년대 후반, 정의부가 국민부로 개편되면서 이에 소속되었다. 1930년 8월, 최효일, 김일성의 삼촌 김형권 등과 군자금 모집 결사대를 조직하고 함경남도 풍산군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과 교전하여 순사부장을 사살하고 자동차를 습격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9월 체포되어 1931년 함흥지방법원에서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1932년 경성복심법원에서도 동일한 형량이 확정되었다.
1937년 11월 형기 만료 전 가출옥하였으며, 이후 전향하여 만주국 경찰이 주도한 김일성 귀순공작에 중재인으로 투입되었다. 이종락과 함께 김일성을 설득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1940년 1월 이종락이 양정우에게 사살되면서 귀순공작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김준(金俊)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일제 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박패석(朴貝石)으로 오기된 사례도 확인된다. 이는 한자 '且'를 '旦'(단)이나 '貝'(패)로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