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유품(朴震英 遺品)은 조선 인조 때의 무신인 광서 박진영(1569~1641) 장군이 평소 사용하던 유품과 명나라 제독으로부터 받은 장려패문(奬勵牌文) 등을 포함한 유물 일체를 가리킨다. 이 유품은 경상남도 함안군 산인면 내인리에 소재하며, 1979년 5월 2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03호(당시 명칭: 박진영장군유품)로 지정되었고,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인 '박진영 유품'으로 변경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지정번호 체계가 폐지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박진영(1569~1641)은 증 형조판서 박오(朴旿)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호는 광서(匡西), 시호는 무숙(武肅)이다.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문학과 활쏘기·말타기에 능하여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물리쳤고, 그 공으로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이후 용궁현감(1599), 경흥도호부사(1613)를 역임하였으며,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는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별장으로 종군하여 동교에서 반군을 격파하였다. 평산도호부사와 해서방어사(海西防禦使)를 겸임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1636년 병자호란 이후 비분강개하다가 1641년(인조 19) 73세로 사망하였다.
유품의 총 수량은 231점이며, 밀양박씨 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의 종손인 박성길(朴性吉) 씨가 소장하고 있다가 2005년부터 2006년까지 3회에 걸쳐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유품 중에는 교지(敎旨), 분재기(分財記), 토지문서, 노비문서, 호구단자(戶口單子), 소송문서, 입안(立案), 간찰(簡札) 등 각종 고문서가 포함되어 있어,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현재 유품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