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朴宗薰, 1773년 ~ 1841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외교관이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성화(聖和), 호는 견숙(繭叔)이다. 1811년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通信使) 사절단의 정사(正使)를 맡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생애 및 관직 생활
1773년(영조 49)에 태어났다. 1794년(정조 1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이후 홍문관 수찬, 사헌부 지평 등 요직을 거쳤으며,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다.
주요 활동
박종훈의 가장 주요한 행적은 1811년(순조 11)에 단행된 제12차 조선 통신사의 정사(正使)로 임명되어 사절단을 이끈 것이다.
당시 조선과 일본(에도 막부)의 외교 관계는 막부의 재정난과 내부 사정 등으로 인해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박종훈이 이끄는 사절단은 이전처럼 에도(현 도쿄)까지 직접 방문하지 않고, 쓰시마섬(대마도)에서 일본 측 사절과 만나 국서를 교환하는 '역지빙례(易地聘禮)'의 형식을 취하였다. 이는 1607년부터 시작된 조선 통신사 역사상 마지막 공식 파견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후 및 평가
그는 이조판서와 의정부 우찬성에 이르렀으며, 사후에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박종훈이 정사로서 수행한 1811년의 사절단 활동은 조선 후기 외교 형식의 변화와 한일 관계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박종훈과 관련된 기록은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및 당시 사절단의 행적을 기록한 여러 문헌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