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박종주

박종주는 한국의 인명(人名)으로, 동일한 이름을 가진 여러 인물이 역사 및 현대에 걸쳐 존재한다. 이 이름은 특정한 단일 개념이나 사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성씨 '박(朴)'과 이름 '종주(鍾柱·宗胄·宗柱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고유 인명이다. 한자 표기에 따라 서로 다른 인물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1. 조선 중기의 문신 — 박종주(朴宗胄, 1591~1623)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언중(彦仲)이다. 아버지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박광선(朴光先)이다. 1615년(광해군 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지냈다.

아버지와 형 박종윤(朴宗胤) 등과 함께 정인홍(鄭仁弘)의 심복으로 활동하며 이이첨(李爾瞻)과 결탁하여 탐학을 일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1622년 승지(承旨)에 올라 관반(館伴)으로 남도에 내려가 음학(淫虐)을 일삼고 인명을 해쳤다고 전해진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국이 바뀌자 삼사의 합계(合啓)로 처형이 주장되었고, 금부도사(禁府都事)에 의해 대구 남문 밖에서 참수되었다. 이때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들어 시신의 살점을 도려냈다는 기록이 『광해군일기』 등에 남아 있다.

2.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 박종주(朴鍾柱, ?~?)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고향은 전라남도 해남(海南)이다. 광주농업학교 재학 중이던 1929년 6월, 조길룡(曺吉龍)·김남철(金南哲) 등 광주농고생 20여 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하여 항일학생비밀결사인 광주농고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 독서회는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학생비밀결사였던 성진회(醒進會)가 해체된 후 이를 계승·확대 개편한 '독서회중앙본부'의 하부조직으로 결성된 것이었다.

1929년 11월 12일 제2차 광주학생독립운동 시위 때에는 김남철·박석진(朴石珍) 등 독서회원들과 함께 광주농고생 200여 명을 이끌고 만세시위에 나섰다. 이로 인해 1930년 1월 17일 일경에 체포되었고,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았다.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여 1931년 6월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3. 현대의 인물들

현대에는 동명이인으로 성형외과 의사(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의 전 배우자로 알려짐), 미술학자·미술사학자 등이 존재한다. 이들은 각각 독립된 개인으로서 별개의 인물 정보를 가진다.

정리

'박종주'라는 이름은 위와 같이 서로 다른 시대와 분야에서 활동한 여러 인물을 가리키는 한국의 고유 인명이다. 특정한 단일 인물이나 개념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므로, 해당 이름을 접할 때에는 문맥과 한자 표기를 통해 어떤 인물을 가리키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