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상은 한국의 역사 및 현대에서 동명이인의 실존 인물들을 가리키는 인명이다.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한자 표기와 시대를 달리하는 여러 인물이 동일한 이름을 쓰고 있다.
1. 현대 정치인·노동운동가 (朴仁相)
1939년 12월 5일 출생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상남도 사천 출신으로, 1959년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한 이후 약 35년간 노동운동에 종사하였다. 1969년 대한조선공사 파업 당시 노조 선전부장을 맡아 당시 정부의 첫 긴급조정권 발동 사례에 연루되기도 하였다. 이후 전국금속노조 부산지역지부 및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제16대 국회의원(비례대표, 새천년민주당)을 역임하였다. 노동계에서는 "합리적 개혁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2. 조선 중기 역관 (朴仁祥)
1562년(명종 17) 출생한 조선 중기의 역관(譯官)이다. 자는 경서(景瑞)이며, 본관은 음성(陰城)이다. 1582년(선조 15) 식년시 역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차비역관(差備譯官)으로 조선과 명나라, 명나라와 일본 사이의 외교 담판에서 활약하였다. 1604년(선조 37) 요동 주민들이 의주 지역의 무단 경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나라를 여러 차례 내왕하였다. 1609년(광해군 1) 사역원 훈상(訓上)으로 임용되어 당상관이 되었으며, 1617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랐다.
3. 조선 후기 학자 (朴仁祥)
조선 후기에 활동한 학자이다. 자는 성보(聖甫), 호는 포옹(圃翁) 또는 매국헌(梅菊軒)이며,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1714년(숙종 40) 사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갔다. 성균관 유생으로 송시열·송준길의 문묘배향을 주장하고, 명릉 지문 개정을 상소하는 등 정치적 활동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초야에 묻혀 지냈다. 1767년(영조 43) 동지중추부사에 올랐으며, 저서로 『포옹집(圃翁集)』이 있다.
4. 근대 한의학자 (朴寅商)
근대기의 한의학자로서 사상체질의학 연구에 반세기 가까이 종사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호는 우천(又川)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 인물에 대한 상세한 생몰 연대와 업적은 공개된 공신력 있는 백과사전 수준의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확인이 제한적이다.
종합 고려: "박인상"이라는 명칭은 위와 같이 시대를 달리하는 여러 실존 인물을 지칭하는 동명이인 인명이다. 위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sillokwiki, 위키백과 및 언론 보도 등에서 확인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다. 다만 같은 한자 표기(朴仁祥)라도 조선 중기의 역관과 조선 후기의 학자는 별개의 인물이며, 현대의 정치인은 한자 표기(朴仁相)가 다르다. 그 외에도 박인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다른 인물이나 공인된 개념적 용례로서의 의미는 공신력 있는 정보가 부족하여 확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