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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덕

박인덕(朴仁德, 1896~1980)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에 활동한 교육자, 여성운동가, 언론인, 작가이자 사회사업가이다. 아호는 은봉(銀峰)이며, 이명(異名)으로 박임덕(朴姙德), 일본식 창씨명은 영하인덕(永河仁德)이다.

생애

1896년(일부 자료는 1897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하였다. 진남포 삼숭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이화학당에 진학하여 1912년 중학부, 1916년 대학부를 제3회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 모교인 이화학당의 교사로 재직하며 영어, 기하, 체육, 음악 등을 가르쳤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학생들의 만세시위운동을 선동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4개월간 수감되었다. 이때 제자였던 유관순의 순국을 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방 후에도 대한독립애국부인회 등에 참여하였으나同年 12월 다시 투옥되었다.

출옥 후 1921년부터 배화학당 교사로 근무하며 신문, 잡지, 강연 등을 통해 여권 신장과 여성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에는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회장을 맡았다.

1927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아주의 웨슬리안 대학(Wesleyan College)에 입학, 이듬해 사회학 학사로 졸업하였다. 이후 뉴욕 콜럼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 사범대학에 진학하여 1930년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재학 중에는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대학에서 순회강연을 하였고,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에 가담하여 미국 전역에서 강연 활동을 펼쳤다.

귀국 후 1932년 황애시덕, 김활란 등과 함께 조선직업부인협회를 통해 여성 경제 강연을 진행하였고, 1933년에는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1935년에는 『농촌교역지침』을 발간하였다.

친일 활동

1939년 일제의 황도주의(皇道主義)를 표방한 녹기연맹(綠旗聯盟)에 가입하였고, 경성기독교여자청년회(YWCA)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녹기연맹 부설기관인 청화여숙을 본따 덕화여숙(德和女塾)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 『삼천리』에 친일 성향의 글을 게재하고 전쟁 협력을 촉구하는 시국강연을 하였다. 이후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결성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평의원 및 부인대 지도위원을 맡는 등 일제의 전쟁 수행에 협력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였다.

해방 이후

1945년 해방 이후 독립촉성중앙회, 독립촉성애국부인회 등에 가담하였다. 1946년 제1회 국제부인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였고, 1950년대 중반까지 미국 각지에서 한국 상황에 관한 강연을 하였다.

1954년 자전적 영문 소설 『9월 원숭이(September Monkey)』를 출판하였고, 이후 『호랑이 시(The Hour of the Tiger)』(1965), 『The Wisdom of the Dragon』(1970), 『The Cock Still Crows』(1977) 등의 저서를 발간하였다.

1962년 학교법인 인덕학원을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았다. 1963년 인덕실업고등학교(현 인덕공업고등학교)를, 1972년 인덕예술공과전문학교(현 인덕대학)를 설립하여 평생을 교육 사업에 종사하였다.

1980년 4월 3일 서울에서 사망하였다.

평가

박인덕은 일제강점기 여성계몽운동과 교육 사업에 기여한 한편, 일제 말기 친일 행적으로 인해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그를 교육자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록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그의 활동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호 및 제13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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