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朴英規, ? ~ 970년 6월)는 신라 말기의 호족이자 후백제의 귀족이며, 고려 초기의 외척이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후백제의 왕 견훤(甄萱)의 둘째 사위이다.
출생과 배경
출생 연도와 출생지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는다. 아버지는 박언지(朴彦志)로 알려져 있으나 그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다. 승평군(昇平郡,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호족으로, 후백제의 왕 견훤을 섬기며 후백제의 건설과 발전에 공을 세웠다.
활동 및 고려 귀순
935년(후백제 견훤 44년), 견훤의 아들 신검(神劒)이 반역을 일으켜 동생 금강(金剛)을 죽이고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하였다.同年 6월 견훤이 금산사를 탈출하여 고려로 망명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936년(고려 태조 19년) 9월, 박영규는 아내인 국대부인 견씨(견훤의 딸)와 비밀히 상의한 뒤 고려에 사자를 보내어 귀순 의사를 밝혔다. 그는 왕건(王建)이 의로운 군사를 일으키면 내응하여 고려군을 맞이하겠다는 뜻을 전하였다. 왕건은 이를 크게 기뻐하며 사신을 후하게 대접하고 금석지약(金石之約)으로 후일을 기약하였다.
같은 해 9월, 왕건이 후백제를 칠 때 박영규는 내응하여 후삼국 통일을 완성하는 데 공헌하였다.
고려에서의 지위와 가족 관계
왕건은 박영규의 공을 높이 치하하여 좌승(左丞)을 제수하고 밭 1,000경(頃)을 내려주었다. 또한 역마 35필로 그의 부인을 맞이하게 하고 두 아들에게도 벼슬을 주었다. 이후 관직은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르렀다. 사망 연도는 970년 6월로 기록되어 있으며, 대전시 유성구 박장골에서 박영규의 묘가 발견된 바 있다. 묘지석에는 사망일과 처가 견씨(甄氏)임이 기록되어 있다.
박영규의 세 딸은 모두 고려 왕실에 출가하였다. 첫째 딸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은 고려 태조 왕건의 제17비가 되었고, 둘째 딸 문공왕후(文恭王后)와 셋째 딸 문성왕후(文成王后)는 고려 정종(定宗)의 왕후가 되었다. 이로 인해 박영규는 순천 박씨(順天朴氏)의 시조로 인식되며,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외척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